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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5〉마오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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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5〉마오의 부활

입력
2008.06.2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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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일 이상 하늘이 맑은 날이 없고, 세 자 이상 땅이 평평한 곳이 없으며, 은화 세 냥 이상 돈을 가진 사람이 없다." 구이조우(貴州)에 대해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이다. 장정 중 홍군은 12개 성을 지나갔다.

그 중 홍군이 가장 오래 머문 지역이 바로 가난의 땅 구이조우이다. 장정 기간의 3분의 1인 거의 넉 달을 구이조우에서 보냈다. 츠수이(赤水)라는 강을 네 번이나 건너는 등 구이조우를 뺑뺑 돌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홍군이 지나간 12개 성 중 중국의 역사를 바꾸는데 가장 기여한 곳을 하나만 고르라면 그곳이 구이조우이다. 구이조우에서 마오(마오쩌둥ㆍ 毛澤東)가 권력을 잡음으로써 중국공산당의, 그리고 중국의 역사가 바뀐 것이다.

묘얼산(猫兒山)을 넘은 홍군은 붙잡은 국민당군 옷으로 변장을 하고 구이조우의 주요 도시인 준이(遵義)를 무혈점령했다. 그리고 역사적인 준이회의와 함께 보구(博古)와 브라운이 2선으로 물러나고 마오가 권력에 복귀한다.

준이에서 중국공산당은 구이조우, 윈난(雲南), 쓰촨(四川)지방의 방대한 영토에 새로운 근거지를 설치하며 이를 위해 우선 양쯔강(揚子江ㆍ장강)을 건너 북상하여 동북 쓰촨에 자리잡고 있던 장궈타오(張國燾)의 제4방면군과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홍군은 츠수이로 진격했지만 국민당군의 저항으로 북상하는데 실패한다. 이에 마오는 국민당군으로 하여금 홍군의 진군방향을 가름하지 못하도록 남하했다가 다시 북상하여 츠수이를 네 차례나 건너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중 한 군데가 바로 중국을 대표하는 술인 마오타이(茅台)를 생산하는 동네인 마오타이다. 그리고 적의 예상을 깨고 이미 점령한 바 있는 준이로 돌아가 이를 다시 한 번 점령함으로써 적을 혼란에 빠트린 뒤 서남에 있는 윈난성으로 빠져 나갔다.

■ 중국역사를 바꾼 땅 준이

준이는 당시에도 인구 50만(현재 100만)명의 큰 도시였다. 적지 않은 홍군들은 여기서 전깃불과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을 난생 처음보고 놀랐다고 한다. 1935년 1월15일, 독일 혁명가 로자 룸셈부르크가 학살을 당한 날로 홍군은 그를 추모하는 대중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7시 회의실에 모였다.

정치국 위원만이 아니라 확대회의를 열기로 한 것이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보구였다. 그는 샹강(湘江)전투 등 그간의 전투의 패배와 관련해 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보구 후에 입을 연 것은 저우언라이(周恩來). 그는 그간의 패배와 관련해 자신을 비롯한 지도부의 실수를 인정하며 진솔한 자기비판을 털어 놓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원티엔(張聞天)이 보구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발한 뒤 브라운의 무능도 질타했다.

이어 마오가 일어나 연설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나 계속된 연설에서 마오는 중국고사를 인용해 송곳 같은 풍자로 보구와 브라운을 비판했다.

'모든 면에서 우위인 국민당군을 상대하려면 유격전을 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패배주의로 몰면서 정면대결을 고집한 보구와 브라운의 전략 전술은 군사적 모험주의로서, 결국 소비에트의 근거지를 모두 잃고 샹강에서 대패를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중국에는 중국에 맞는 전략과 전술이 있는 법"이라는 말로 발언을 끝냈다. 3일이나 계속된 회의는 결국 3인 군사위원회의 기능을 정지하고 마오를 정치국 상임위 위원으로 선출했다.

회의지에 도착하자 마오가 특유의 흘려쓰는 글씨체로 쓴 '준이회의 회의지' 현판이 걸린 건물이 나타났다. 무수히 많은 장정 기념지 중 마오가 직접 현판을 써준 곳은 이 곳 뿐이라고 한다. 하긴 준이에서 기사회생했으니 안 그렇겠는가.

명성답게 회의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하루 평균 입장객이 2,000명에 입장료 수입 만해도 매일 10만위엔(한화 1400만원) 정도이니 이 정도면 '홍색관광'(장정 등 공산당의 역사와 관련된 관광)도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회색 기와를 얹은 아담한 집의 이 층으로 올라가자 회의실이 나타났다. 중국역사를 바꾼 현장이다. 회의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갈색 사각형 탁자를 가운데에 놓고 의자가 빙 둘러 있었는데 모두 앉으면 별로 움직일 공간이 없었다. 이 좁은 방에서 얼마나 뜨거운 설전이 오갔을지 상상이 갔다. 보구와 브라운을 비판하는 마오의 포효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기념관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준이회의는 중국혁명의 방향을 크게 바꾼 관건"이라는 마오의 어록. 이어 화롯불을 가운데 피워 놓고 논쟁을 하고 있는 회의 참석자들의 조각과 사진이 나타났다.

참석자들의 양력과 사진을 진열하고 주요 참석자들의 발언 요지도 요璿?놓았다. 단지 모스크바의 신임을 받았다는 이유로 불과 20대에 중국공산당을 총지휘한 보구의 앳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20대에 고시를 통과해 검사가 되어 범죄를 심판하는 것도 문제가 많은데 그 나이에 세상과 인간의 심리를 얼마나 안다고 혁명을 총지휘하겠는가.

■ 들것의 반란과 스킨쉽의 정치

'붉은 교수'는 왕자샹(王家祥)의 별명이다.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최고 엘리트 이론간부들을 키우는 모스크바 홍색교수학원을 졸업한 수재로, 이후 소련이 중국 소비에트구역에 전권대표로 파견한 모스크바그룹의 핵심이다.

그는 장정 전 폭탄 파편이 창자를 관통하는 중상을 입어 고무관으로 몸 속 고름을 계속 밖으로 빼내야 했고, 대나무로 만든 들것에 누운 채 장정 길에 나섰다. 정치국 정위원이었던 장원텐(張聞天) 역시 보구의 모스크바 유학동기인데도 실세에서 밀려나 있었는데 몸이 좋지 않아 그도 들것 신세를 져야 했다.

말라리아 후유증으로 역시 들것을 타고 있었던 마오는 이들에 접근했다. 나이가 한참 많은 마오는 큰 형같이 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줬고 중국고사에 능통한 입담으로 이들을 사로잡았다. 예상대로 왕자샹과 장원텐은 준이회의에서 마오가 권력을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들것의 반란'이었던 셈이다. 결국 마오식의 '스킨십 정치'가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준이회의의 회의장을 보고 있으니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 알 고어와 이회창이 선거에서 인간미가 넘치는 부시와 노무현에게 패배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스킨십 정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크바 양옥선생', 그리고 '독립건물선생'. 당시 홍군들이 지도부를 비아냥거릴 때 사용하던 표현이다. 모스크바 양옥선생은 모스크바 유학파를, 독립가옥선생은 코민테른에서 파견된 브라운을 가르치는 말로 그가 독립건물에 따로 살면서 각종 특권을 누렸기 때문이다.

준이회의는 양옥선생과 독립건물에 대한 마오의 승리, 다시 말해 코민테른과 모스크바파에 대한 토착세력의 승리를 의미한다. 이는 러시아혁명의 경험에 기초한 도시봉기에 대한 농촌혁명의, 전면적인 시가전에 대한 유연한 게릴라전의, 도시노동자노선에 대한 농민노선의 승리다. 1930년대 중국은 여러 면에서 러시아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민테른의 권위에 기초해 러시아의 경험과 지시를 절대시했다. 황석영의 <손님> 이 생각났다. 황해도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을 배경으로 한국인들의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외래사상 맹신을 비판한 소설이다. 준이회의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많은 작품이다.

장정과 중국혁명을 보면 보편적 법칙이라는 이름아래 서구의 경험을 맹종하는 것 보다 개별국가의 특수성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역사나 사회현상의 보편적 측면을 무시하고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북한과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강조하는 주체사상은 결국 사회주의국가들에서도 유례없는 권력 세습이라는 희극을 만들어냈다.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사회과학의 어려운 숙제를 다시 한 번 고민하면서 준이를 떠났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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