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 올림픽 성화 봉송이 진행되기 하루 전인 20일 시짱(西藏) 자치구(티베트)의 성도 라싸(拉薩)는 축제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내 전체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티베트 불교 총본산이어서 ‘티베트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조캉사원에서도 순례자들은 조용히 오체투지(五體投地·사지와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리는 절)로 불심만을 불태웠다. 시내 주요 거리에는 봉송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국기나 플래카드 등도 전혀 걸리지 않았다.
주민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중국 정부의 의중이 엿보였다. 다음날 성화 봉송이 이뤄진다고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낮 동안 맑았던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바람이 거세지자 을씨년스러웠다.
라싸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는 중국 무장경찰을 가득 태운 경찰트럭이 20~30㎞로 저속 운행하면서 시내를 순찰하는 것이 목격됐다. 트럭이 천천히 운행해 주민들은 무력시위로 느낄 듯했다. 주요 간선도로에는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고 거리 곳곳에는 경찰차가 진주해 있었다.
3월 14일 소요사태 직후 상황에 비해 라싸는 상당히 안정돼 있는 듯 보였다. 5월 철수했던 무장경찰 병력을 이달 초 다시 배치하는 등 성화봉송에 대비한 중국 정부의 치안이 강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요사태 후 98일째인 이날 거리에서 만난 라싸 주민들은 한결같이 무표정했다. 외국 기자들의 질문도 피했다. 번화가 중 한 곳인 베이징시루(北京西路)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성화 봉송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할말이 없다” “대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요 사태 당시 가족들이 모두 무사했느냐는 질문에 일부 주민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라싸 분위기를 보면서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인들이 17일 반중시위를 벌이며 “티베트에는 성화봉송이라는 가면극이 아닌 정의가 필요하다”고 외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은 예년 이맘때면 관광차들로 북적일 라싸 시내에 관광객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지역경제와 살림살이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치구 공무원 반둬(潘多)씨는 “5월 이후 국내 관광객의 출입이 허용됐지만 주민의 주 수입원인 관광이 사실상 죽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21일에는 티베트의 성전인 포탈라궁 앞 광장 등 일부 시내 구간에서 성화봉송이 이뤄진다. 중국 정부는 당초 3일 예정했던 봉송기간을 하루로 단축했다.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임을 보여주기 위해 일정을 단축하면서까지 부담스러운 봉송을 강행하는 것이다.
성화봉송이 어떻게 진행되든 당분간 꽁꽁 얼어붙은 티베트인들의 가슴은 풀리지 않을 듯하다. ‘신의 거주지’라는 뜻을 지닌 라싸에서 자애로운 신의 이미지는 찾기 어려웠다.
글ㆍ사진 라싸=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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