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한인 2세대들이 정치가 뭔지도 모르면서 오바마를 지지하고 있다.” 이는 흑인 주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미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기 이전에 미 한인 동포사회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던 얘기다. 대부분의 이민 1세대 한인 동포들은 오바마 의원이 강력한 경쟁자인 백인 여성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고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다.
그래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한인 1세대들은 대다수가 힐러리 의원 편이었고 정치자금 기부도 힐러리 의원 쪽에 집중했던 것이 한인 사회의 대체적 기류였다.
한인 1세대 민주당 지지자들이 힐러리 의원에게 몰렸던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워싱턴 정치의 기득권적 시각에서 보면 ‘정치 초년병’에 불과한 오바마 의원의 변화 메시지가 못 미더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의원에 대한 거부감은 주로 그가 흑인이라는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부인하기 어렵다. 흑인보다는 그래도 백인 여성이 11월 대선 본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던 것이다.
흑인에 대한 전통적 거부감
미 뉴욕ㆍ뉴저지 지역의 ‘한인 유권자센터’ 김동석 소장의 진단에 따르면 흑백 대결에서 흑인이 필패(必敗)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백인 위주의 미 주류사회에 함몰돼 있는 인종주의적 정서”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 백인들도 인종적 편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함은 물론이다. 문제는 한인 1세대들이 ‘체험적으로’ 갖게 된 인종적 정서가 골수 백인들보다도 오히려 더 심각한 상태라는 점이 이번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확인됐다는 데 있다. 오바마 의원이 대선후보를 거머쥔 이후에도 한인 사회에서는 “흑인이 미 대통령이 되기는 시기상조다”, “오바마 의원 때문에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오바마 의원이 대선 과정에서 암살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 비관론까지 들린다.
오바마 의원은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각종 여론조사 수치에서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앞서가며 대선 승리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 그렇다고 한인 사회가 소수 인종 출신이라고 해서 오바마 의원을 무조건 지지할 까닭은 없다. 한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적 갈등에는 납득할 만한 배경도 있다.
16년 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흑인들을 상대하는 중소규모 한인 자영업자들은 흑인들로부터 인종적 멸시를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흑인들은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빈번하다. 흑인들이 백인들로부터 받은 수모를 한인에 대한 해코지로 해소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인 인종주의 극복의 계기
그러나 한인사회가 미국 사회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종적 질곡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하게 다가오는 현실적 요청이다. 오히려 흑인 대통령의 출현 가능성이 열린 미국의 시대적 상황은 한인 사회에 새로운 도전적 과제이면서 동시에 인종주의를 극복하고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도약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인사회에서도 경제적 중ㆍ상류층은 여전히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는 사정을 감안하면 오바마 의원을 포용하려는 태도는 한인사회에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변화는 오바마 의원이 대선에서 이기든 아니든 한인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소통을 위해서도 아주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