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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김옥선의 사진이 던지는 질문 "당신 배는 어디로 탈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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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김옥선의 사진이 던지는 질문 "당신 배는 어디로 탈출합니까"

입력
2008.06.2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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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배경으로 외국인들의 초상 사진을 찍는다면, 결과는 어떨까. 일단 두 가지 전형적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나는 관광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면을 보여주는 르포르타주 사진이다.

하지만, 제6회 다음작가상 수상자인 김옥선(41)은, 그 두 전형에서 벗어난 장면을 성공적으로 포착해 제시한다. 지난 19일 금호미술관에서 공개한 ‘함일의 배’ 연작이 바로 그것. (함일은 작가가 하멜에게 붙여준 한국식 이름이다.)

관광 산업에 의해 이국적 이미지를 뒤집어 쓴 제주. 그리고 제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방랑하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의 남쪽 섬에 도착한 이방인들. 이 진부하기 쉬운 두 요소를 진부하지 않은 형식으로 기록한, 김옥선의 이야기는 하멜에서 시작한다.

전남 강진의 하멜 기념관에 가면, 범선이 엉뚱하게 땅 위에 올라앉았는데, 그 풍경은 가히 초현실적이라, 여러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감흥을 불러일으켜왔다. 김옥선은 “1653년 서귀포 앞바다에 표류한 뒤 조선에 억류되고, 13년 만에 가까스로 탈출한 헨드릭 하멜”에 감정을 이입했다. 그런데, 때마침 올해는 작가가 제주에 정착한 지 13년째 되는 해.

그간 작가는 자신이 겪은 ‘한국사회와의 불화’를 작품에 반영해왔다. ‘해피 투게더’ 연작(2002-2005)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외국인과 결혼해 국내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충돌하는 문화적 차이들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객관적으로 촬영한 사진들이지만, 억누른 분노로 가득했다.

그런데 ‘함일의 배’ 연작에서 작가는 내면의 분노를 다스린 모습이다. 이제 그는 타인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인다. 작가 노트엔 이렇게 적었다. “제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만나 하멜이 그토록 떠나고자 했던 한국에 대한 그들의 애착을 듣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방인들의 감정 표출을 배제한 얼굴과, 가을부터 봄 사이 구름으로 뒤덮인 제주의 야릇한 날씨는 묘한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경계선상의 삶을 사는 이들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이나 단호함이, 예의 관광지의 매력적 모습이 아닌 낯선 풍광과 병치될 때, 묘하게도 리얼리티가 도드라진다.

피사체들의 정체성은 제각각이다. 제주에서 국외자 특유의 현실 도피적 삶을 영위하는 이들도 있고, 잠시 공연차 섬에 들른 사람들도 있다. ‘원어민 영어 선생님’ 특유의 어중이떠중이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들이 있는가 하면, 규칙적 노동으로 단련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작가가 피사체의 개인적 이야기와 욕망에 초점을 맞춰 귀를 기울인 결과, 도리어 촬영자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가 한층 강조됐다. 분노가 작업의 원동력이었던 시절엔, (작가의 의도와 달리) 모델과 촬영자가 동일시됐더랬다. 참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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