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장구름이 잔뜩 낀 21일, 서울 도봉산 선인봉의 고난도 암벽 코스인 하늘길 앞에 섰다. 해발 6,239m에 달하는 파키스탄의 거벽 트랑고타워 원정을 위해 다음달 8일 출국을 앞두고 막바지 훈련에 열심인 ‘2008 트랑고타워 여성 등반대’의 김점숙 대장과 채미선, 김동애, 박정주 대원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이미 세 번째 피치(암벽 등반자가 안전한 지점을 확보할 수 있는 루트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40미터 내외)에 이른 뒤, 마지막 하강만을 앞두고 있었다.
10여분의 기초 훈련을 받고 등강기를 이용해 로프에 매달린 채 여성원정대가 기다리는 1피치로 오르는 사이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에 힘이 빠졌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도봉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찔함을 뒤로 한 채 가까스로 목표 지점에 오르자, 김점숙 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로프와 자신을 믿으세요. 암벽 등반 하면 흔히 목숨 걸고 한다고 생각들 하는데, 그런 비장함은 없어요. 즐거움이 훨씬 크니까요. 그래서 우린 다른 여자들이 화장품 살 때 그 돈으로 등산 장비를 사죠.”
그러나 이들이 목표로 하는 파키스탄 발토르 빙하의 북부에 위치한 암봉의 무리를 일컫는 트랑고타워는 이제까지 여성원정대로는 등정에 성공한 예가 2007년 슬로베키아 팀이 유일할 정도로 결코 간단치 않은 대상.
원정대의 목표 지점으로 4인조 미국 여성그룹 뱅글스의 노래 제목에서 이름을 딴 ‘이터널 프레임’(Eternal Flame)을 정복하기 위해서 이들은 무려 34개의 피치를 오른다.
등정에 꼬박 3주가 걸리고 하강 시에도 3일간 로프에 매달린 채 식사와 수면을 해결 해야 한다. “고산 등반을 하는 산악인들에게 에베레스트가 그러하듯 트랑고타워도 암벽 등반가라면 누구나 열망하는 대상이에요.”
올해 초 원정 목표를 세운 뒤 비용조달 등의 온갖 어려움을 헤쳐온 이들이지만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숙제는 여전하다. 한국의 대표적 암벽 등반가인 김점숙 대장은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친정 어머니에게 맡길 예정이고, 지난해 12월 결혼한 채미선 대원은 신혼의 단꿈을 접어야 할 상황.
등정을 위해 휴직계를 낸 다른 두 대원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가족들이요? 우리가 이렇게 높은 암벽 오르는 건 몰라요. 그냥 등산이나 하는 줄 알죠. 알게 되서 반대하더라도 끝까지 설득해야지요.”
훈련을 마친 뒤 야영장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낸 김 대장과 대원들은 ‘암벽 등반의 변’을 저마다 꺼내놓았다.
“벽을 오를 때마다 서로에 대한 ‘신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요. 자신에게는 엄격함을 타인에게는 관대함을 배우는 과정이지요. 80세가 되더라도 산악인으로 남아 그런 미덕을 계속 배울 수 있었으면 해요.”
글ㆍ사진=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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