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십중팔구는 산 속에 틀어박혀 도를 닦고 있는 사이비 종교인을 떠올릴 것이다. <격암유록> 과 <정감록> 이 조선왕조 이후의 신도읍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계룡산의 신도안 지역은 어느샌가 우스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공간으로 몰락했다. 정감록> 격암유록>
미신으로 치부되는 계룡산 문화를 통해 한국의 왜곡된 근대화 과정을 조명하는 박찬경(43)의 개인전 '신도안'이 서울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21일 개막했다.
서울대에서 회화를,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는 2004년 에르미스 미술상을 수상한 작가로,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이미지 작업을 통해 분단과 냉전 문제를 다뤄왔다.
"개인적으로 계룡산에서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 있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그곳에 도착해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산의 낯섦이 알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오더군요. 그저 산의 형세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왜 그런 감정을 갖게 된 걸까, 그때부터 탐구하기 시작했죠."
작업 이슈를 바꾼 이번 전시에는 계룡산의 신도안을 다룬 45분짜리 영상작품 '신도안'과 신도안 기록사진, 신도안의 건축모형인 '신도안의 집'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조선왕조가 패망한 후 새로운 왕조의 도읍지가 될 것으로 예언됐던 신도안은 일제시대 동학 등 다양한 종교 사상이 창궐하면서 갖가지 신흥종교와 무속신앙의 메카가 됐다. 하지만 일제에 의한 탄압, 박정희 정권의 미신타파운동, 1984년 육해공 삼군통합본부 계룡대의 주둔으로 신도안의 주거시설과 종교시설은 대부분 철거되고 말았다.
1년 반 동안 매달려 만든 영상작품 '신도안'은 흡사 중편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신도안의 무수했던 지역 종교들의 흥망을 노스탤지어 가득한 시선으로 보듬는데, 그 화면은 때로 아름답고 때로 두려우며 때로 조악하다 때로 뭉클하기도 하다.
"필름을 촬영하면서 계룡산의 종교문화가 얼마나 억압돼 있었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동학시천교의 시천주를 듣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미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종교에 감화될 만큼 감동적이고 눈물이 날 것 같더라구요. 우리가 미신으로 치부하는 주문이나 제도 종교의 찬송가나 다를 게 뭐죠?"
한국사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억압된 기억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계룡산이 그 억눌린 기억들을 충격적으로 환기시켜줬다"며 "이것은 한국 근대화의 문제"라고 말했다.
흑백과 칼라, 연출과 자료화면이 자유로이 한몸으로 섞이는 필름은 탁월한 '담론의 미학'을 보여주지만, 보수적인 관람객이라면 영화에 가까워보이는 이런 작품도 미술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현대미술에 들어오면서 미술은 시각매체의 강박에서 벗어나 글, 음악 등 다양한 매체들을 아우르게 됐죠. 미술은 자기반성적인 장르라 20세기부터 이런 질문은 있어왔지만, 현대미술에 있어서는 중요치 않은 질문입니다. 저처럼 복합적인 문제를 다루는 작가에게는 더더욱이요."
그는 <올드보이> 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친동생이다. 카메라를 들고 작업하면서 혹 형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까. 올드보이>
"아무래도 형제니까 영향을 좀 받았겠지만 저흰 성향이 달라요. 형이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전통적인 과정을 거쳐 상업영화의 감독이 된 것과 달리 저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작업을 할 뿐이죠." 전시는 8월 17일까지. (02)544-7722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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