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소요 사태가 발생한 지 꼭 100일의 시간이 흐른 22일 시짱(西藏) 자치구(티베트)의 성도 라싸(拉薩)는 다소 긴장이 풀린 듯 한산한 모습이었다. 전날 중국 정부가 라싸에서 진행한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의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상점들이 약탈당하거나 불이 난 칭녠루(靑年路) 등은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젊은이들도 쇼핑하기 위해 거리를 누볐다. 예전 같은 활력은 아니지만 좀 나아졌다고 주민들이 전했다. 이제는 소요의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다. 거리 곳곳의 무장경찰 병력이 소요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무공해 햇볕이 내리쬐는 포탈라궁 앞을 걸으면서 209명(티베트 망명정부측 추산)의 생명을 앗아갔던 소요 사태가 과연 티베트인에게 무엇을 남겼는가는 질문이 입 안을 맴돌았다.
티베트 정부가 소개해준 불교 지도자 다자 단청거례화보는 “많은 이들이 생업과 학업이 일시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는 원래대로 회복했다”고 말했다. 외신 기자들은 자치구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3ㆍ14 사태가 티베트를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여러 차례 들었다. 성화 봉송 행사는 중국 정부의 이런 입장을 다시 확인해주었다. 21일 오전 9시 달라이 라마의 여름궁전이었던 뤄부린카(羅布林卞)에서 봉송을 시작하기 전 친의즈(秦宜智) 자치구 주석은 “티베트 성화가 중국인의 애국심에 불을 붙일 것”이라며 “달라이 라마 집단의 분열책동을 분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1시 40분 진행된 봉송이 끝나 포탈라궁 앞 광장에 성화가 도착하자 장칭리(張慶黎) 자치구 당서기는 “티베트의 하늘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의 오성홍기는 이 하늘 아래에서 영원히 휘날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송 종료 행사장 배치는 퍽 상징적이었다. 과거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던 권부인 포탈라 궁 앞 광장의 행사 무대는 대형 오성홍기 게양대와 티베트의 중국 합병을 기념하는 시짱평화해방기념탑이 사이에 설치됐다. 3ㆍ14 사태가 달라이 라마에 의해 사주된 사건인 만큼 이들의 책동만 없으면 된다는 중국 정부의 인식이 그대로 묻어났다. 하지만 삼엄한 봉송 경비는 이 같은 자신감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9.3㎞ 구간의 봉송로를 수 천 명의 일반경찰, 무장경찰이 두 겹으로 에워싸 만일의 봉송 방해 행위를 차단했고, 봉송로 주변 상점은 문을 닫았다. 흐린 날씨와 겹치면서 60만명이 사는 도시에 적막감을 더해주는 풍경이었다.
티베트족 민속의상을 입은 환영 인파들은 봉송이 끝나자 열을 맞춰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동원됐다는 느낌을 확 풍겼다. 외신 기자들은 성화 봉송 출발지점과 마지막 도착 지점 두 곳만의 취재가 허용됐다. 물론 도시 곳곳에는 무장경찰이 경계를 펴고 있었다.
하지만 봉송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열의는 그리 높지 않았다. 뤄부린카에서 만난 티베트족 학생은 행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의미를 잘 모르지만 환영한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100일의 시간이 흘렀지만 티베트인들의 자주적 운동으로 소요사태를 보려는 외부 시각과 사태 책임을
달라이 라마에게 돌리려는 중국측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주민들과의 자유로운 접촉이 차단된 상황에서 3ㆍ14 사태에 대한 그들의 진정한 생각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라싸=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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