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서방의 유일한 공산국가인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완전 정상화한다.
EU 27개 회원국들은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담에서 “쿠바의 민주주의를 격려하기 위해 대 쿠바 제재조치를 해제키로 합의했다”고 베니타 페레로 발트너 EU 대외관계 담당 집행위원이 밝혔다.
EU는 2003년 쿠바 정부가 반정부 인사 75명을 체포한 데 대한 항의로 ▦EU 회원국 정부인사의 쿠바 방문 금지 ▦쿠바에서 열리는 문화행사의 EU 외교관 참가 금지 등의 제재조치를 취해왔다. 이 조치를 배경으로 유럽 대사관들은 쿠바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쿠바의 저명한 반체제 인사들을 만찬이나 리셉션에 초대하는, 이른바 쿠바 정부와 ‘칵테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재조치는 2005년 유예된 뒤 지금까지 아무 효력이 없는 채로 남아있어 상징적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따라서 이번 제재 해제는 형식적으로 남아있던 법적 장애물을 제거해 쿠바와의 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조치는 쿠바보다 EU측이 더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형 피델의 뒤를 이어 2월 권력을 공식 승계한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이 취임 이후 주목할만한 개혁정책을 잇따라 내놓자 그의 개혁ㆍ개방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EU 내에 적지 않았다. 특히 과거 쿠바를 식민통치한 적이 있는 스페인이 제재 해제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EU는 피델이 와병으로 권력의 2선으로 물러난 2년 전부터 쿠바와의 완전한 정치대화 채널 복원을 모색해 왔다.
반면 쿠바 정부는 제재가 공식 해제되기 전까지 EU와의 관계 발전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여기에는 베네수엘라, 중국 등과의 활발한 인적ㆍ물적 교류가 큰 자신감으로 작용했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의 의료진을 수입하는 대가로 매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원유를 쿠바에 제공해왔고, 중국은 니켈 등 쿠바 원자재의 주요 수입국으로 부상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라울 대통령 취임 이후 다변화한 쿠바 외교의 승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문제는 미국이다. 쿠바 공산혁명 이후 62년부터 쿠바에 대해 금수조치를 취하고 있는 미국은 쿠바의 인권상황이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EU의 이번 조치에 반대하고 있다.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은 “(쿠바) 정권의 변화는 지극히 사소한 표면적인 것에 불과할 뿐 카스트로 독재와 결별했다는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은 정책을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고든 존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도 “제재 해제 이전 쿠바의 인권상황에 대한 많은 개선조치가 필요하다”며 EU의 조치에 유감을 표시했다. EU 내에서도 스웨덴 체코 등이 미국 정부와 비슷한 우려를 표명했다.
EU는 이를 의식, 내년 쿠바의 인권상황을 재검토한 뒤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새로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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