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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대통령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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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대통령의 사과

입력
2008.06.2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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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19일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특별 기자회견을 하였다. 취임 후 두 번째로 내보낸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 메시지이다. 국민들과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선적인 시도인 셈이다.

회견을 지켜보는 일부 사람들의 눈에 이번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내거는 배수진과도 같은 통렬한 자기반성, 그리고 앞으로 정말 잘 하겠다는 엄숙한 서약으로 다가온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일부의 눈에 이는 위기를 비켜가려는 상투적인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정말 어려운 국민과의 소통

사과 내용의 진정성을 해석하는 판이한 입장들, 그리고 내용에 포함된 무역마찰 사례의 적절성을 둘러싼 시비 등을 보면 대통령과 국민과의 사회적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원래 소통은 어려운 일이다. 소통을 정말 잘 하겠다고 결심하고, 어디 표어라도 써 붙이고, 가슴 벅찬 감동의 메시지를 비장한 마음으로 내보낸다고 잘 되는 일이 아니다. 소통은 혼자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복잡 미묘한 상호작용 과정이기 때문이다.

힘껏 멀리 공을 쳐 보내려 하면 맥없이 굴러가는 땅볼을 치기 십상인 골프처럼, 소통도 잘 하려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장애를 초래하기 일쑤다. 이러한 역설은 모든 사람들이 결국 자기 본위적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묵묵이, 남의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을 떠버리라고 할 때, 잘 알려진 소통이론 중 하나가 우리는 자신의 말을 할 때는 묵묵이, 남 얘기를 들을 때는 떠버리가 된다는 것이다.

말하는 자의 입장에서 사람들은 은밀한 내면은 최대한 감추면서 가장 보편적인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추한 모습은 감춰지고 가장 멋진 모습만이 밖으로 비쳐졌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역으로 타인의 말을 듣는 입장에서 사람들은 가장 사사로운 개별자의 관점에서 타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자 하게 된다. 최대한의 이기적 관점에서 혹시 자기와 관련된 불이익은 없을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촉각을 세우며 타인의 잘못 찾기에 주력하는 것이다.

그 결과 모든 소통 행위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메시지는 과신하고 역으로 타인의 메시지는 불신하는 자기 본위적 편향이 자리잡게 된다. 이른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다. 이러한 편향은 상호간에 갖고 있는 작은 오해나 편견이 타인과의 소통과정 속에서 악순환적으로 심화되어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굳어져 버리는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남에 대한 신뢰ㆍ관용이 중요

진정한 의미의 소통 능력이란 현란한 수사를 구사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자기 본위적 편향성을 얼마나 자각하는가의 정도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실제 모습이 무엇일지, 거꾸로 타인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이 얼마나 협소하고 편향되어 있을지 깨닫는 순간 이러한 편향성은 비로소 줄어들고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며 상대방을 신뢰하고 관용할 줄 아는 시민의식의 성숙이 이에 다름 아니다.

또한 중간에서 말을 전달하는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소통의 문제는 대통령 혼자 뼈저린 반성을 한다고 풀릴 일이 결코 아니다. 이는 우리사회가 진정한 선진 시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미디어, 그리고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 모두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풀어가야 할 어려운 숙제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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