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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물대포를 희롱한 촛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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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물대포를 희롱한 촛불의 힘

입력
2008.06.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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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대에 사진 한 장의 위력은 어떤 극악한 권력보다도 강할 수 있다. 우리의 근ㆍ현대사에도 역사의 흐름을 바꾼 여러 장의 사진이 있다. 한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모습을 담은 사진은 4ㆍ19의 도화선이 되었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한열의 모습이 담긴 영상은 6ㆍ10 항쟁의 아이콘이 되었다. 웃옷을 벗어 던진 채 태극기를 휘날리며 절규하던 젊은이의 사진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역사를 담은 '이 한 장의 사진'

김주열과 이한열의 사진은 그들의 고통과 죽음이 바로 나의 것일 수 있음을 일깨워 주었고, 절규하는 젊은이의 모습은 우리들 속 깊이 자리해 있던 저항의 코드를 자극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일구어 왔다.

그렇다면 2008년 봄 40일이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모여든 촛불들의 행렬에 담긴 시대정신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도 있을까? 물론 이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사태 전체를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를 찾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이제 대중은 주류 매체가 제공해 준 이미지를 소비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주장과 입맛에 맞는 영상을 만들어 언론과 권력을 마음껏 비웃고 희롱하며, 이 메시지는 인터넷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전파된다.

스스로 창조하고 즐기는 이미지가 강조되다 보니 현장의 리얼리티가 담긴 사진은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인터넷에는 하루에도 수백 장의 새로운 사진이 떠돌지만 정작 사태의 핵심을 담아낸 한 장의 사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스스로를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역사의 역동성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6월 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6월 1일 새벽 경찰이 처음으로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았는데 이 물대포는 6월 10일 세종로 한 복판에 쌓아올려 세계의 조롱거리가 된 ‘명박산성’과 함께 이번 사태의 상징이 되었다. 국민의 손에 들린 촛불에 대한 대응으로는 꽤나 생뚱맞다. 그래서 물대포와 명박산성은 성난 국민과 소통할 의사와 능력이 전혀 없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되었다.

기념물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와 관련된 역사가 저절로 쓰이지는 않는다. 이 기념물들은 눈과 귀를 닫아버린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민과 소통한다. 올라가지 못하도록 기름칠까지 한 명박산성의 벽에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벽보와 현수막이 내걸리고, 용접을 하고 모래주머니까지 채운 견고한 컨테이너 장벽은 스티로폼을 쌓아 올려 만든 계단에 의해 간단히 ‘정복’된다. 명박산성은 그렇게 시민과 만남으로써 그 역사적 소임을 다한 뒤 사라졌다.

물대포가 시위대와 소통하는 방식은 훨씬 더 극적이다. 시민들은 차가운 물줄기의 세례를 받아 쓰러지고 고막이 터지면서도 온수와 세탁비를 달라고 외친다. 시위대는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해석하여 극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역설적 해학이 또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시위대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을 그렇게 만든 권력에 분노하는 대신 야릇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까지 한다.

물대포를 맞은 20여명의 모습

나를 잡아 끈 한 장의 사진은 물대포를 맞은 직후의 시민들을 찍은 것이다. 20여명이 스크럼을 짠 채 물줄기를 맞은 모양이다. 그 20여명이 취하고 있는 엉거주춤한 자세와 짓고 있는 다양한 표정들이 이 사태 전반에 대한 국민의 정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표정 속에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권력에 대한 노여움, 어이없음, 억울함,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약간의 장난기,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 등이 묘하게 섞여 있다.

2008년의 촛불에는 4ㆍ19와 6ㆍ10에서 보는 것과 같은 비장한 각오와 역사에 대한 엄숙함이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크고 끈질긴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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