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감독이 스스로 출전을 포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SK 김성근(66) 감독은 '윤길현 욕설 사건'을 사과하는 뜻에서 19일 잠실 두산전에 결장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징계를 받지 않은 감독이 출전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날 2군으로 내려간 윤길현은 머리를 짧게 자른 채 집에서 자숙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의 결장은 신영철 SK 사장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김 감독은 윤길현 욕설 파문이 확대되자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과를 했다. 그러나 머리를 조아리는 것만으로 비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출전 포기라는 극단적인 고육책을 꺼냈다.
선수단 숙소인 서울 리베라 호텔에서 묵고 있는 김 감독은 18일 경기가 비로 취소되자 밤을 꼬박 지새운 것으로 알려졌다. 고민 끝에 출전 포기를 결심한 김 감독은 아침에 신영철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결정을 전하면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신 사장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김 감독의 고귀한 뜻을 헤아려 만류하지는 않았다.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서울 리베라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은 "윤길현이 저지른 불미스러운 행동에 대해 야구관계자와 야구팬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용서를 구했다. 그는 선수단을 통솔하고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의사 표시를 더 빨리 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김 감독은 SK 두산에 0-8로 영봉패 하는 동안 숙소에서 TV 중계를 지켜봤다.
김 감독이 출전을 포기하는 사태로 이어진 윤길현의 욕설 파문은 지난 15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발생한 KIA 최경환과의 위협구 시비가 발단이 됐다. 이 과정에서 윤길현이 욕설을 내뱉는 장면이 TV에 비쳤고, 흥분한 KIA 팬들은 윤길현과 김성근 감독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윤길현이 직접 최경환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지만 KIA 팬들은 17일 SK-두산전이 열린 잠실구장을 찾아 윤길현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플래카드 시위를 벌였던 KIA 야구팬은 "최경환과의 실랑이보다는 나이가 열세 살이나 더 먹은 이종범에게 예의 없이 군 행동을 따지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SK가 KIA팬의 목소리에 조금 더 빨리 귀를 기울였다면 김성근 감독의 결장 같은 사건은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사령탑 없이 경기에 나선 SK는 이날 두산에게 0-8로 대패했다. 최근 4연승을 달리던 선발투수 송은범은 1회말 채상병에게 홈런을 맞는 등 6실점하면서 무너졌고, 팀 타율 1위(0.294)를 달리던 타선은 3피안타에 그치는 사이에 수비실책은 3개나 저질렀다.
한편 한화는 롯데와의 대전 홈경기에서 홈런 5방을 주고 받는 공방전 끝에 9-8로 짜릿한 재역전승을 거뒀다. KIA는 LG를 8-6으로 꺾었다. 목동에서는 우리 히어로즈가 김동수의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삼성을 11-10으로 따돌렸다.
이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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