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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시 시대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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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시 시대의 유산

입력
2008.06.2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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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마지막 유럽 순방을 다녀왔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융숭하게 대접했지만 반대로 그를 반기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영국에서는 반전단체 회원 2,500여명이 부시 대통령의 방문에 항의, 격렬한 시위를 했다. 물론 2003년 11월 부시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수만 명이 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인원이 많이 줄었지만 부시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도 여전히 전쟁의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영국 신문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호전적인 말투 때문에 전쟁광처럼 비쳐졌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말투를 핑계로 댈 뿐 전쟁 자체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후회를 하든, 하지 않든 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고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귀한 목숨을 잃었고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으며 극심한 국론 분열에 휩싸이기도 했다. 외부의 거센 반발은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것 뿐일까.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최근 서구 민주주의가 큰 위협을 받고 있는데 거기에 부시 대통령이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은 오사마 빈라덴의 인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겠다는 이유로 전쟁을 시작하면서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거창한 명분도 함께 내걸었다.

하지만 그런 목표를 전쟁으로 달성할 수는 없었다. 슈피겔에 따르면 도리어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역효과를 냈을 뿐이다. 부시 대통령 한 사람, 미국 한 나라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서구 민주주의 그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반대로 권위주의 정부, 독재체제가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슈피겔은 “기업의 효용성이 강조되면서 권위주의가 민주주의를 압도하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이상이 퇴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며칠 전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에 실린 기사도 비슷하다. 뉴스위크는 세계 주요 지도자 신뢰도 조사 결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등, 푸틴 러시아 총리가 2등으로 나온 사실을 전하면서 특히 특정 국가의 지도자 가운데 푸틴 총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실에 주목했다.

뉴스위크는 “이라크전이 미국식 민주주의에 끼친 피해의 결과로, 지도자 개인 뿐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며 “이번 조사 결과가 민주주의 전파를 핵심 외교정책으로 삼았던 부시 행정부에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구 민주주의가 절대적 가치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 자유주의, 개인주의 등 그것이 표방하는 이념은, 현실의 서구 민주주의가 가진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회 체제 역시 역사성과 함께 적지 않은 장점을 지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전파를 앞세웠던 미국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위축을 가져왔다는 두 잡지의 지적은 쉽게 흘릴 것이 아니다.

이제 부시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한국의 이른바 정치인, 지식인 그리고 관료들은, 서구 언론 조차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왔다고 지적하는 부시 시대의 힘 자랑에 장단을 맞추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이제 몇 달 뒤 새로 탄생할 미국 정부와 어떻게 협력해야 세계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박광희 국제부 차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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