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Kitsch)로 가득한 패러디는 원본의 완벽한 이해가 전제될 때 폭소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익살스러운 풍자는 그저 허공을 향한 의미 없는 외침일 뿐이다. 17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첫 무대를 가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개막작 <유로비트> 가 그랬다. 유로비트>
다음달 7일까지 계속되는 이 페스티벌은 새로운 뮤지컬 인력을 키우고 잠재 관객을 개발한다는 목표로 마련된 행사로 올해로 2회째다. 개회 전 축제 사무국측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상업적 작품 대신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해 지역 축제의 한계를 넘은 국제 행사로 키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유로비트> 는 이 같은 취지에 따라 선택된 해외 초청작이다. 지난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 당시 현지 언론으로부터 '감동과 매력과 장난기가 가득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9월에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종연일이 정해지지 않은 오픈런 형식으로 공연될 예정이기도 하다. 유로비트>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객석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패러디가 먹히지 않은 까닭이다. 유럽 각국의 가수들이 자국을 대표해 참가하는 음악 이벤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모티프로 한 <유로비트> 는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웨덴 등 총 10개국 대표팀이 출전해 노래 경연대회를 펼치는 형식. 매 장면과 대사가 패러디이자 풍자다. 유로비트>
예컨대 아일랜드는 19세기 중반의 감자 기근을 빗댄 듯 '감자칩이 주식인 나라'로, 러시아는 '대량 신용카드 사기 등의 자연재해가 있는 나라'로 소개된다. 이탈리아 참가자의 이름은 베르수비아 베르사체, 러시아 참가팀은 KG보이즈(Boyz)이며 스웨덴 참가팀은 아바를 본뜬 아블라(AVLA)다.
유럽을 넘어 전세계 공연 관계자와 관객이 모이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라면 몰라도 한국에서 이런 식의 유머가 폭발적인 웃음으로 연결되리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무리였다. 더욱이 이 작품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대한 오마주다. 1956년부터 이어져 온 유로비트 송 콘테스트는 유럽에서는 스포츠 이상으로 각국의 응원 열기가 뜨거운 행사다.
현지화 차원에서 관객에게 참가 10개국의 핀을 미리 나눠주고 해당 국가를 응원하도록 유도했으나 그것만으로 공연에 몰입하기엔 동인이 부족했다. 관객이 문자메시지로 투표해 매회 공연의 우승팀이 달라지는 쌍방향성 공연이라던 홍보 문구와 달리 첫 공연은 시스템 오류를 이유로 집계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이날의 우승은 러시아에게 돌아갔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들어선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성장통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관객의 코드와 동떨어진 실험성이 축제의 차별성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 공연이다.
22일까지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후에는 25일~7월 6일까지 서울 한전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서울 공연에서는 10개 팀의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의 문자 메시지가 집계되는 동안 남경주 전수경 최정원 등 국내 정상급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하는 특별 무대가 마련된다. 대구 공연 문의는 (053)622-1945, 서울 공연은 (02)3141-1345
대구=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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