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지(49) 국립발레단장은 17일 국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엄마, 러시아에 오셔야 겠어요!” 지난해 2월 러시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에 입단한 딸 최리나(22)의 흥분된 목소리였다. 입단 1년 4개월 만에 주역을 맡게 됐다는 소식에 최 단장은 “정말이냐”며 감격했다.
18일 전화 통화에서 최리나는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꿈을 꾸는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최리나는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리아극장에서 공연되는 <차이코프스키> 에서 차이코프스키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폰 메크 부인 역을 맡았다. 현대발레의 거장으로 불리는 세계적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대표작 중 하나다. 차이코프스키>
이 발레단에서 최리나는 유일한 동양인이다. 그를 제외한 50명은 모두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연방 출신들이다. 그래서 2주 전 주역 통보를 받고 연습을 하면서도 ‘설마 정말 내가 하게 될까’하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캐스팅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어제 에이프만의 사인이 들어간 최종 캐스팅 서류가 나왔는데 정말 제 이름이 있더라구요.”
최리나는 어머니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시절, 연습실을 따라다니다 자연스레 발레를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유명한 어머니의 존재는 버거웠다.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하면 누구 딸인데 왜 못하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1등을 해도 진심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말수도 적어지고 성격도 소심해졌죠.” 결국 예원학교 3학년 때 캐나다 국립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최태지 딸’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힘겹게 떠난 유학이었지만, 178㎝의 큰 키는 클래식 발레에 제약이 됐다. 군무를 하면 삐쭉 튀어나왔고, 파트너를 찾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발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해 춤을 포기했다.
1년간 쉬던 그를 다시 춤추게 한 것이 에이프만이었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긴 라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에이프만은 유독 키 큰 무용수들을 선호한다.
2006년 마음을 비우고 봤던 오디션에서 통과, 러시아로 건너간 최리나는 3개월 간의 연수를 거쳐 정식으로 입단하기에 이르렀다. 백영태 강원대 교수가 앞서 이 발레단에 몸담았지만, 주역을 한 적은 없었다.
최리나는 “말도 안 통하는 러시아에서 처음 몇 달간은 눈 뜨는 것 조차 괴로웠지만 에이프만의 춤이 너무 좋아 꼭 남고 싶었다”면서 “의사 소통이 가능해지니까 마음도 편해지고, 역할도 점점 커졌다”고 말했다.
일과는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살기 때문에 연애할 시간도 없다”는 그는 “남자친구 좀 보내달라”며 웃었다.
최리나는 다음달 24~27일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선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유서연과 한상이, 벨기에 세드라베 무용단의 예효승 등 해외 유명 단체에서 활동 중인 무용수들의 갈라 공연이다.
그는 에이프만의 <붉은 지젤> 과 <안나 카레니나> 의 파드되(2인무)를 준비했다. “이제 어머니보다 더 유명해지는 것 아니냐”는 말에 최리나는 “딱 엄마만큼 되는 게 목표”라고 답했다. 안나> 붉은>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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