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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파업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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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파업에 대처하는 자세

입력
2008.06.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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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건설노조, 민주노총…. 최근 연이은 노동쟁의를 접하면서 파업에 대처하는 정부나 우리 사회의 자세가 문득 궁금해진다. 공기업 민영화, 건강보험 개선 등 각종 쟁점이 산적해 있는 데다 파업 대처 방식이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미발표 유고,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과 상당히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ㆍ경기 악화등 역효과 강조

논쟁에서 이기는 첫 번째 요령은 ‘확대 해석하라’이다. 파업이 발생하면 경제악화, 생산차질, 물류대란이라고 할 만한 심각한 위기가 동시에 발생할지는 알 수 없다. 별반 영향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파업이 많이 발생한 2000년, 2002년 모두 경기성장률이 높은 반면 파업 최저치를 기록한 2007년의 경기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유사 이래 최고의 파업이라는 1987, 1988년도 유례없는 경기 호황이었다.

이처럼 상관관계가 불분명한데도 파업=경기 악화가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해결보다는 희생양 찾기나 노조 죽이기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더구나 13번째 요령 ‘상반되는 두 가지 명제를 동시에 제시하여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어라’에 이르면 우려가 좀 더 커진다. 특정 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임금인상 파업을 하면 정규직 이기주의이고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요구해도 엉뚱한 정치적 이슈라고 평가절하되며 노동자를 포함한 서민 모두의 물가 안정대책이나 쇠고기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 불법파업이라고 하는 평가가 이 요령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최근 정부의 불법파업 규정 혹은 불법파업에 손 놓고 있는 정부라는 일부 언론의 비판은 ‘서둘러 결론을 이끌어내라’는 20번째 요령과 많이 닮았다. 모든 정치파업이 불법은 아니며 근로조건과 관련된 경제적 정치파업은 합법으로 인정되거나 최소한 논란의 대상이다.

헌법에 규정된 파업권이 제한될 소지 때문에 불법파업에 대한 판단은 신중해야 하는 데다 노조를 파트너로 생각한다면 근로조건 및 서민의 생계대책과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을 한번은 더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도 너무 빠른 판단을 한다.

부부관계에 법을 들이대면 이혼이고 부모형제 간 재산분쟁에 법을 들이대면 자칫 연을 끊는 것이다. 노사관계도 다르지 않아 법적 잣대는 모든 노력을 다 한 뒤의 마지막 선택이다. 그런데도 법과 원칙에 의한 엄정 대처에 의존하는 것은 ‘이성이 아닌 권위에 호소하라’는 30번째 요령과 비슷하다. 파업을 떼쓰기 혹은 파업 만능주의의 산물로 간주하는 것은 ‘상대가 억지를 쓴다고 큰소리로 외쳐라’는 22번째 요령이나 ‘상대가 우월하면 인신공격을 감행하라’는 38번째 요령에 해당할 수 있다.

비용 관점에서만 보는 건 잘못

180년 전 쇼펜하우어가 왜 이런 책을 썼는지, 논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해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사관계의 목적은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며 파업도 노사가 이해하고 공존하며 해결하고 상생하기 위한 우회로라는 사실이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인 노동자에게 파업권이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모든 파업이 정당한 것은 아니지만 파업도 파업 나름이며 길게 보면 사회발전을 위한 투자일 수 있다. 수백년 전 6세 어린이조차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렸던 상황이 개선되고 자본주의 사회 전체가 발전한 것은 파업 때문이었다. 화물연대 파업은 타결됐지만 파업을 오직 비용으로만 보는 관점이 파업에 대처하는 자세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때이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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