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초대 감사원장에 김황식(60) 대법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자 19일 법원 안팎에서 현직 대법관의 행정부 행(行)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사법부의 ‘대들보’를 빼내 행정부의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은 부적절하며, 정부의 요청을 덥석 받아들인 사법부도 재판과 법원의 독립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 대법관의 감사원장 내정 소식에 일선 법관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재경 법원의 한 소장 판사는 “임기도 한참 남아 있고 국회 청문회까지 거쳐서 대법관이 됐는데 임기를 끝마치지도 않고 그만두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05년 11월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 김 대법관은 아직 6년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또 다른 판사는 “정치 쪽에 발을 담그셨던 분도 아니고 정부요청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김 대법관은 내정 과정에서 고사의 뜻을 강하게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인사 후유증도 걱정하고 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독립을 보장받아야 할 사법부가 정권의 협조 요청에 부응하는 모양새나 다름없다”며 “정부와 사법부의 유착이라는 선례를 남길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법원은 상당히 안정적인 조직으로 대법관을 포함한 모든 법관의 인사가 예측가능하다”며 “갑작스런 대법관 인사 수요로 법원 조직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법원 내부는 벌써부터 후임 대법관 하마평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물론 현직 대법관의 행정부 직행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대법관 임기 1년여를 남겨 두고 감사원장으로 전격 발탁돼 사법부와 행정부의 가교가 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이 총재는 이미 대법원 판사(지금의 대법관)를 한 차례 지낸 뒤 대법관을 중임한 터였고, 집권과 함께 대대적 사정에 나섰던 YS정부와 ‘대쪽 판사’로 이름 난 이 총재의 이미지가 맞물린 인사였다.
이에 비해 김 대법관의 감사원장 발탁은 ‘시대적 필요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평가다.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을 포함한 사정라인 책임자가 영남 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자 지역 안배 차원에서 감사원장 후보를 물색하다 전남 장성 출신의 김 대법관이 추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견 법조인은 “임기가 한참 남아 있던 전임자도 마침 호남 출신인데 굳이 무리하게 인사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의 배경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이용훈 대법원장의 미묘한 관계를 꼽고있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이 대법원장이 지난해 대선 투표 당시 “차기 대통령은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길 바란다”며 새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한 데 이어 이번에는 인사교류 카드를 수용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김 대법관은 이 대법원장의 고교 7년 후배로 이 대법원장이 법원 내에서 가장 총애하는 후배 법관으로 알려져 있다.
● 김황식 대법관은 누구법원내 신망 높고 보수 성향 짙어
법원 내부에서 신망과 덕망이 높기로 유명한 정통 법관이다. 광주지법원장 시절 매일 아침 직원들과 나눈 이메일 통신을 직원들이 법원 주소지를 따 '지산(芝山)통신'이라는 책으로 엮어 선물했다는 일화가 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내면서 행정 경험도 두루 했다.
하지만 이념적 성향은 '보수의 철옹성'이라는 대법원에서도 중심에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보수다.본보가 지난해 분석한 대법관 이념 지형도에서도 김 대법관은 안대희 대법관과 함께 가장 오른쪽에 있었다. 실제 지난해 주심을 맡은 '상지학원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 무효 소송'에서 상지학원 측의 손을 들어 줘 진보단체들로부터 "비리 사학을 감싸는 판결"이라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본인은 자신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 '중도저(低)파'라는 표현을 쓴다.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굳이 편을 들라면 낮고(低)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는 쪽이라는 설명이다.
김정곤 기자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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