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넘어야 내가 산다.’
평화의 제전으로 불리는 올림픽이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비슷한 기량을 가진 라이벌을 꺾지 않고서는 금메달의 영광을 누릴 수 없다. 종목별 ‘라이벌 열전’은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끈다. 여자역도의 장미란-무솽솽(중국)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남자기계체조의 양태영(28ㆍ포스코건설)과 폴 햄(26ㆍ미국)이다.
4년 전 아테네의 악몽
2004년 8월19일 새벽(한국시간), 먼 나라 그리스에서 전국민을 분노로 들끓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올림픽인도어홀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체조 남자 개인종합경기. 경북체육회 소속이던 한국의 양태영은 57.774점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체조 사상 처음으로 개인종합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였다.
그러나 양태영은 차마 환하게 웃을 수 없었다. 손에 잡힐 듯했던 금메달이 엉뚱한 이에게 넘어갔기 때문. 햄은 도마에서 확연한 실수를 범하고도 9.137점을 받았고, 이어진 평행봉과 철봉에서 연달아 9.837점을 획득하며 금메달을 앗아갔다.
햄에 대한 후한 평가도 잘못됐지만, 양태영의 평행봉 연기 때 스타트 밸류(출발점수)를 낮게 적용한 게 결정적이었다. 심판진은 양태영의 스타트 밸류에 10점이 아닌 9.9점을 매겼고, 결국 이것이 빌미가 돼 햄의 대역전극이 완성됐다.
그로부터 4년 후
오심 파문은 이후 해당심판 자격정지 등으로 이어졌으나 끝내 빼앗긴 금메달은 찾지 못했고, 양태영과 햄은 4년 후 베이징올림픽에서 얄궂은 재회를 하게 됐다.
아테네올림픽 이후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학업에 전념했던 햄은 지난 2월 윈터컵챌린지대회 개인종합에서 1위를 차지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햄은 지난달 말 휴스턴에서 열린 VISA챔피언십대회에서도 개인종합 예선 1위에 오르는 등 올림픽 2연패를 향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현재 햄은 오른 손목 부상 중이지만 미국대표팀은 그를 베이징행 최종명단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양태영 또한 지난달 11일 태릉선수촌에서 끝난 베이징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전체 1위(86.075점)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양태영의 목표는 평행봉 금메달과 개인종합ㆍ단체전 동메달. 대표팀 맏형 양태영은 지난해 9월 독일세계선수권대회에서 팀을 5위에 올려놓았고, 12월 프레올림픽 개인종합에서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수확했다.
‘폴 햄 트라우마’는 없다
1988년 서울올림픽 도마 동메달리스트인 박종훈(43ㆍ관동대 교수) 본보 해설위원은 “우리 대표팀은 단체전에서 미국 독일 러시아와 치열한 동메달 다툼을 벌일 전망”이라면서 “특히 폴 햄이 이끄는 미국과 양태영이 주축이 된 한국의 싸움이 볼 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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