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입법부는 부재 중이다. 18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한 지 18일로 20일이 흘렀지만 여야는 개원 협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쇠고기 파동과 촛불집회로 나라가 술렁이고 화물연대 파업으로 국가의 혈류가 멈춰 섰지만 국회는 오불관언격으로 문을 걸어 잠갔다.
대의민주주의가 실종된 가운데 민의는 거리로 쏟아졌다. 쇠고기 문제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각종 정치 현안과 연결돼 ‘거리의 정치’로 일상화할 태세다. 거리의 민심 앞에 대의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걸러 담고, 선도하기는커녕 추종하고 눈치보기에만 급급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정치권의 최근 모습을 보면 어쩔 줄 몰라 쩔쩔맨다는 표현이 딱 맞다”고 말했다.
통합민주당은 쇠고기 재협상을 걸어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이 쇠고기 재협상을 선언하거나 한나라당이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약속하지 않는 한 등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등원을 무한정 늦출 순 없다”며 방향을 틀 것처럼 보였던 손학규 대표도 18일에는 “내가 내일 당장 들어가자고 그랬느냐. 많은 의원들과 협의해 정치를 파국으로 이끌지 않도록 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당내 강경론에 밀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린 모습이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민의 무시를 비판하는 민주당이 정작 국회를 하루 빨리 열라는 민의에는 귀를 막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여당다운 정치력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대신 압박과 공세를 앞세우며 정치 선동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날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야당의 등원을 기다리겠지만 민생 경제를 감안하면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야당이 감안해 줬으면 좋겠다”며 거듭 야당을 압박했다. 하지만 지금 여당에게 필요한 것은 압박이 아닌 야당을 이끌어낼 정치력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는 새 하루가 아쉬운 민생법안은 쌓여 간다. 대의제 국가에서 거리의 아우성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법안으로 다뤄져야 한다.
정부가 8일 내놓은 고유가 극복을 위한 민생대책도 당장 조세특례제한법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지방세법 등 6건의 관련 법이 개정되고 추가경정예산안이 처리돼야 실행 가능하다. 정부는 국회 공전으로 입법 절차가 지연될 경우 고유가 민생대책의 시행 타이밍을 놓치게 되기 때문에 조기에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소득층 휴대폰 요금 인하, 지방 미분양 주택 해소 등 서민생활안정대책도 법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국회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이러다 보니 개원조차 못한 국회를 겨냥해 세비 환수 운동까지 벌어질 조짐이다. 한 시민단체는 이날 “임기를 시작한 18대 국회가 개원조차 못함에 따라 18대 의원전원을 국회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내는 정치를 향한 조소와 조롱인 셈이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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