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국가정보원은 청와대의 긴급 지시를 받았다. 국내 30대 기업의 투자 및 신규채용 진척사항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것.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6월 3일)을 맞아 이 대통령이 외쳤던 기업 친화적인 정책에 기업들이 어느 정도 호응하는지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고급정보도 아닌 기업 투자 현황 파악에 굳이 국가정보기관까지 동원된 이유는 뭘까. 관계자는 "전경련이 진행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는데다 파악할 의욕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의 '정보 부재' '의지박약'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전경련은 지금까지 각 기업의 계획을 취합해 올리기만 했을 뿐 이후 시의성 있게 진행실태를 파악할 안테나조차 가동하지 않고 있다.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절박한 국민적 요구에 대한 답의 출발은 대기업이고, 전경련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명박대통령은 '1970년대 오일쇼크이후 최대의 위기'(16일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제주재무장관회의서)라는 절박한 상황인식을 하고 있으나 정작 재계, 전경련은 첩첩산중인 경제계의 어려움을 사실상 나몰라라 라고 있는 것이다.
새정부, 특히 이대통령의 재계 사랑은 지나칠 정도다. 당선 직후부터 쏟아낸 이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그 방향은 분명하고 실제 인수위시절부터 내놓은 각종 대책은 대기업 중심이다. "문자 그대로 '비즈니스 프렌들리'(bisiness friendlyㆍ기업 친화적)한 정부를 만들겠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작년 12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전경련 회장단 간담회) "경제살리기의 주역은 정부가 아니고, 기업이고, 기업이 돼야 한다"(올 3월 상공의 날 기념행사) 등은 극히 일부의 예다.
새 정부가 고환율정책을 통해 서민경제에겐 물가폭등이라는 희생을 강요한 것도 대기업을 위한 '수출 경쟁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와 산업단지 조성 간소화, 출자총액제한 철폐 등은 그 많은 비난을 감수하면서 방향을 잡은 대기업 정책들이다. 하나같이 전경련이 주도해서 "경제를 살리려면 규제부터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서 진행되고 있는 사안들이다.
하지만 재계의 메아리는 없다. 새 대통령 당선직후부터 수차에 걸쳐 밝힌 '투자를 작년보다 30% 늘리고, 고용을 18% 늘리겠다'던 30대 그룹의 늠름함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취임 1주년을 계기로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겠다던 전경련과는 완전 딴 모습이다.
투자에 관한한 물론 지난해 말에 비해 사정이 많아 달라졌다. 올해 들어서만 기름값이 40% 가까이 폭등한 데다 국내외 경제성장률은 잇따라 하향조정되고 있다. 미래가 더 불안해지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재계에서도 이미 당초 목표로 했던 투자와 고용창출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가폭등으로 전세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데다 내부적으로는 고환율에 따른 물가 급등으로 내수기반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4월말 "어려울 때일수록 공격 경영으로 과감하게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적극적인 투자와 활발한 일자리 창출'로 화답했던 재계다.
그런 재계가 촛불시위이후 완전 침묵이다. 화물연대ㆍ건설기계 파업에 민노총 총파업까지 예정되는 긴박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으나 제대로 된 보도자료 하나 없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1차적으로 경제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에 책임이 있지만, 과감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호언장담했던 대기업들도 비판을 면할 수가 없다"며 "실질적인 사용자인 대기업이 화물연대 파업과 최근 경제 어려움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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