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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할머니 치매걸려 7년간 집안에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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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할머니 치매걸려 7년간 집안에 그늘…

입력
2008.06.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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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7년동안 치매를 앓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옛날분 치고는 상당히 크십니다. 키 168cm에 몸무게는 70~80kg이 십니다. 활동적이셔서 부녀회장, 반장, 회장등 많은 일을 즐겨 하시는 여장부셨습니다.그런데 고혈압으로 두 번 쓰러지시면서 중풍과 함께 치매가 시작됐습니다. 할머니는그런상황을받아들이기힘들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풀기 시작하셨던 겁니다. 엄마가 따끈한 밥에 고등어 반찬을 해드리면 “내가 언제 고등어 먹고 싶댔냐. 갈치가 먹고 싶다. 상물려라”하시고, 엄마가 “제가 잊었네요. 갈치반찬으로 만들어서 다시 올릴께요”하며 다시 갈치반찬을 해서 올리면 이번엔 “고등어가 먹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엄마는 두 가지를 같이 상에다 올려 놓고“어머니, 이젠 됐죠? 가시 발라드릴께요”하시며 어린아이 달래듯 웃으시며식사를 돕습니다.

할머니는 정신을 놓으시면 완전 남으로 바뀝니다. 제게도 “댁은누구슈, 뉘신데 우리집에 와 계슈. 밥안먹었으면 우리 에미 보고 차려 오라고 시키리다” 하십니다. 그러다 제 정신으로 돌아오시면 “우리 둘째 손녀딸이네.할머니가 이래서 힘들지?”하십니다. 너무나 거짓말 같은 일상이 되풀이 됐습니다. 150cm에 45kg 밖에 안 되는 엄마는 몸집이 거의 두배나 되는 할머니를 매일 씻겨 드렸습니다. 내가 “그냥 하루 건너 씻겨 드리면 안돼?”라고 말하면 엄마는 “노인들은 매일 씻어야 냄새가 안나”라고 답하십니다. 한번은 할머니께서 변을 본 기저귀를 풀어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나는 “정말 내가 못살아. 아휴~~ 냄새하고는”하며 기겁을 하는데, 엄마는“어머니, 놀라셨죠? 깨끗하게 씻겨 드릴께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고 절 데리고 나와서는 “바닥이야 닦으면 되는 거고, 냄새야 환기시키고 청소하면 되는데왜호들갑이야.

할머니가 얼마나 민망하고 창피하시겠어?”라며저를꾸짖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지금 우리보다 조금 아프실 뿐이야, 할머니 무안하지 않도록 신경써 행동해” 이러시더라구요.

종일 할머니의 수발을 드시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고모들이 돌아가면서 집에와 할머니를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반나절도안지나 “나못보겠어. 정말 내 엄마지만 너무해. 왜 나한테 스트레스를 푸냐고.” 이렇게 말하고는 그냥 집으로 가셨습니다. 다음날 다른 고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1년이 2년 되고, 2년이 3년 되고…. 가족들은 점점 말수가 적어지면서 다들밖으로 나가려고만 하는 바람에 힘든 일은 다 엄마 혼자의 몫이 됐습니다. 병이 깊어질수록 할머니의 증상은 더욱 심해졌고 말도 안되는 억지와 욕설에 가족 모두 지쳐버렸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싫은 내색 없이 지극정성으로 할머니를 수발하셨습니다. 주위의 추천으로 효부상 대상자가 됐는데도 “부족하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무슨 상이냐”며거절하셨습니다.

그러다 어느날엄마의 동창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는 회사의 창립기념 휴일이어서 장례식장에 다녀오시라고 엄마의 등을 떼밀고는 제가 할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말씀도안하시고 계속 주무시기만 하시더라구요. 엄마가 집에 돌아오시자 할머니를 다시 엄마에게 맡기고 외출을 했는데 30분도 안돼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집으로 빨리 들어 와.”“엄마, 지금 장난하는 거지? 조금전까지할머니숨쉬는것보고나왔는데….”

엄마 얘기를 들으니 제가 외출한 뒤에도 줄곧 잠을 주무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에미야, 에미야”하고 엄마를 부르시더랍니다. 엄마가 “네, 어머니. 저여기 있어요”하고 다가앉으니 할머니는 엄마의 손을 꼭 잡으시고는 “그 동안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고마웠다, 다음에 또 보자”하신 뒤 눈을 감고 하늘나라고 떠나셨다고 하더군요. 임종 보는 자식은 따로 있다더니 그날 종일돌본 제가 임종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엄마의 효심을 너무나 잘알기에 당연하다고 느꼈습니다.

엄마는 장례 중에도 할머니께더정성껏 모시지 못했다고 얼마나 많이 우셨는지 모릅니다. 장례도 병원 영안실이 아닌 집에서 치렀습니다.“ 마지막 가시는데 편하게 집에서 떠나시도록 해야 한다”고엄마가 고집을 부리신 때문입니다. 일이 어찌나 많은지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사실 집안에 치매를 앓고 계신분이 있으면 경제적인 문제까지 포함해 정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도 가끔 봉사를 가보면 뻔히 자식들이 있는데도 요양원에 할머니들을 보내놓고는 일년내내 찾아 오지도 않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심지어 요양원 측에서 전화해도 받지않고 피하는 자식도 많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엔 요양원 할머니들도 낯선 사람에겐 말씀도 안 하시고 눈길도안주십니다.

그러다 낯이 익으면 그제야 “아들과 며느리가나때문에 싸우는 소리를 들어서 여기로 왔다”는 등 묻지도 않은 말씀들을 하십니다. 요양원에 부모님 떠맡겨 놓고 자식들은 나몰라라 하는 이거야말로 ‘신고려장’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가끔 엄마가“만약 내가 치매 걸리면 제 정신들때직접 요양원으로 가던지, 스스로 세상을 등지겠다”고 말씀하시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그러면서 “치매 수발이 얼마나 힘든 지 내가 알기에 자식들에게 대물림할 수는 없어”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저런 맘을 먹으셨을까?’하다가도 ‘그 상황이 되면 엄마처럼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모실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봅니다. 지금 우리 자식들이 다 잘 되는 것도 그런 우리 엄마 덕이라는생각도 합니다.

치매로 고생하시는 분과 가족분들 모두 힘내세요. 많이 힘들고 지치겠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지금 이순간이 바로 효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MBC라디오 표준FM(수도권 95.9MHz) <여성시대> 에소개된 사연을 매주 금요일 싣습니다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 김은희

일러스트=김경진기자 jin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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