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워싱턴에서는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이 진행 중이다. 한미 양측은 기술적인 세부사항의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 뒤 다시 회담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를 타결하여도 쇠고기 재협상이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쇠고기 협상을 기술적인 부분에 국한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극복하고 재협상에 성공하려면 쇠고기 위생조건 문제의 법적ㆍ정치적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 미국을 잘 알아야 하는 긴 승부
미국은 자국산 쇠고기의 수입위생조건 합의문이 양국 정부에 의하여 정본으로 채택되고 서명된 이상, 국가간 신의 성실(Pacta Sunt Servanda)이라는 국제법의 대원칙에 의거하여 합의문 주요 내용에 대한 변경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국제법에 대한 오해이다. 조약법 상 합의문 채택과 대표자의 서명은 조약의 체결 과정일 뿐이다. 조약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조약 체결권자의 비준과 특정 조약의 경우 헌법 상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합의문의 특정 내용을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당사국은 조약이 완전한 상태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합의문 내용에 대하여 몇 번이고 지속적인 협상을 할 수 있다. 필요하면 이행되고 있는 조약을 개정도 하는데, 비준도 되지 않은 조약의 합의 조건의 변경은 국제관례 상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은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다. 미국이 위생검역의 핵심 조항에 대한 재협상을 거부하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단 채택된 합의문의 내용을 변경하고자 요청한 쪽이 한국이므로, 미국이 또 다른 양허안을 요구하거나 혹은 자유무역협정(FTA)를 무산시키고자 할 수 있다. 따라서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미국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조약 체결에 관한 미국의 정치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헌법 상 조약 체결 절차가 남달리 까다롭고, 의회와 연방정부, 각 주 및 이익집단 사이의 정치적 관계가 조약 체결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우선 쇠고기 벨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적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들도 허점이 있을 것이다.
둘째, 미국의 정치ㆍ사회 구조를 충분히 이용해서 접근해야 한다. 1968년 구정공세 당시 북베트남의 지도부는 여론과 미디어에 민감한 미국 정치의 특성을 간파하여 치밀한 계획 하에 미국 내 반전여론을 확산시키고 결국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였다.
그들은 파리협상에서 구걸하지 않고 챙길 것을 다 챙겼다. 6ㆍ25 전쟁 당시 휴전협상 테이블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한 것은 그런 예이다.
셋째, 관련 국제법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 및 다른 FTA에서 논의되었던 관련 사례 및 조약법에 대한 충분한 분석을 해야 한다. 주로 법률가들로 구성된 미국의 정계나 외교계를 설득하는 데 국제법 이상의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 길게 보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이번 협상은 장기전이다.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응해야 한다.
■ 중요한 건 장벽 없는 국내 소통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 미국과의 성공적인 재협상을 위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마음의 장벽을 걷고 국민과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세종로를 막았던 거대한 기름칠 컨테이너 장벽은 다름 아닌 국민에 대한 대통령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장벽의 원조인 만리장성이 변방에 대한 중국인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과 같다.
장벽을 걷어내고 국민과의 소통과 신뢰를 회복하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 한 국가의 국제관계는 그 나라의 국내정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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