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주들이)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정부가 알아서 화물연대에 경유값 보조금을 늘려줄 것이고, 파업이 지속되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테고….” 물류대란의 한가운데에서 재계를 보는 경제계의 눈이 싸늘하다.
화물연대 파업 닷새째인 17일, 화물연대 파업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임에도 재계는 남의 일 보듯 하고 있다. 물류대란에 정부가 합동담화문까지 발표하는데도 재계는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재계 총 본산이라는 전경련은 한마디 말이 없다. 나라 전체가 경제걱정에 하루하루 살얼음판이지만 국가경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재계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촛불정국 한달여가 지나도록 전경련은 시민의 눈치와 정권의 뒷전에 숨기 바쁘다. 고유가로 경기가 본격 하강하고 있고 일자리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직후 호언장담했던 주요 그룹들의 대대적인 투자계획은 6개월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새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적인) 정책에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겠다“던 재계의 의지는 온데간데 없고 온국민이 겪고 있는 고유가의 고통을 분담하려는 배려도 찾을 수 없다. 전경련이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
7% 성장을 내세운 정부가 무색하게 6%, 5%, 심지어 4%까지 떨어질 상황에 처한 국내 경기에 대해서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켜봐서는 안될 것이란 지적이다. 나라 안팎의 상황이 극도로 불투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새정부 출범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내놓은 ‘95조원 투자계획’중 일부라도 자랑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새 정부가 전경련에 속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정도다. 전경련의 최대 관심사는 지금 국내 경제계 리더로서의 고민이 아니라 여의도 현 부지에 53층짜리 새 건물을 짓기 위한 설계입찰공고다.
물류대란의 조속한 해결에 대한 재계의 적극적인 주문은 절박하다. 이대로 파업이 지속된다면 경제의 혈맥인 물류가 기능을 정지, 그 파장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의 예, 또한 경제계의 기대대로라면 전경련은 이미 주요 그룹의 물류담당 책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승적 차원에서 타결책을 모색했을 일이다. 그러나 “화주들이 적극 나서라”는 말 이외에 뾰족한 대책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국토해양부 장관(15일)과 지식경제부 장관(15,16일)이 나서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화주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지만 재계는 힘없는 운송업체에게 화물연대와의 대화를 미루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화물연대에 대한 경유값 지원확대는 세금이 직ㆍ간접적으로 화주기업들에게도 지원되는 것”이라며 “물류시장에서 우월적인 지위와 가격 결정권을 갖고 있는 대기업들이 하루 빨리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화물연대 파업 상황반장인 국토해양부 김희국 해운정책관은 “삼성 현대 LG SK 등 주요 그룹들의 물동량이 절반 이상이지만, 상대적으로 피해가 크지 않다고 보고 적극 대처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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