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을 친구들은 모르더라구요. 전통이 지루하고 싫어서가 아니라 친구들도 우리 음악을 좋아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크로스오버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다소곳하고 느릿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 담긴 의지는 뚜렷해보였다. 가야금 연주자 이슬기(27)는 국립국악고 시절 전주대사습놀이 기악부 장원, 서울대 국악과 시절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 등을 받았던 국악계 기대주.
그가 최근 이라는 제목의 크로스오버 음반을 냈다.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다. 석 달 전에는 5년간 몸담았던 KBS국악관현악단에서도 나와 본격적으로 독주자로 나섰다. "예전에는 혼자 연습하는 즐거움으로 음악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관객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스스로의 만족보다 소통이 먼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슬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머니와의 담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무형문화재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 문재숙 이화여대 교수. 딸의 선택을 마땅치 않아 했던 어머니는 이슬기의 녹음을 들은 뒤 애썼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슬기는 "이 길이 옳은 것인가라는 두려움도 어머니의 눈물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번 음반에서 그는 25현 개량 가야금으로 재즈와 뉴에이지 풍의 음악을 연주했다. 일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가 두 곡을 만들어줬고, 타이틀곡 'Blossom' 등 직접 작곡한 곡도 넣었다. 판소리 창법이 아니라 부드러운 발라드처럼 부른 제주 민요 '너영나영' 등 전체적으로 편안한 분위기다.
가야금 밖에 모르고 살았던 그는 요즘 재즈 피아노와 탭댄스를 배우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라틴 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가야금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지만 가야금을 놓고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뱃속부터 가야금을 들었고, 첫 장난감 역시 가야금이었다는 그는 "가야금을 통해 세상을 본다. 크로스오버를 할수록 전통의 매력을 더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한 음에 고정되지 않고 폭넓게 떨고, 많은 것을 품어내는 넉넉함이 그가 생각하는 우리 음악의 매력이다.
25일 백암아트홀에서는 음반 발매를 기념한 콘서트를 연다. 그는 "동생은 하필 생방송 진행과 날짜가 겹쳐 오지 못할 것 같다"며 웃었다.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이하늬가 그의 동생. "가야금을 하는 후배로 생각했기에 걱정도 했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해요." 공연 문의 (02) 2658-3546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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