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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내 아들의 연인

입력
2008.06.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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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지음/문학동네 발행ㆍ313쪽ㆍ1만원

정미경(48ㆍ사진)씨가 2001년 늦깎이 소설가 등단 이후-1987년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지만 큰 활동 없이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보여주는 활력은 대단하다. 2002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장밋빛 인생> 을 비롯한 두 편의 장편과 2004, 2006년 각각 출간한 소설집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와 같은 해 한국일보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표제작을 비롯, 수록작 7편은 외적 후광 없이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완성도를 갖췄다.

한국소설에서 드문 “유한계급의 삶의 세밀한 묘사”(평론가 김형중)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던 표제작은 가난한 여자와 교제하는 아들의 연애를 지켜보는 상류층 여성의 복잡한 심사를 그리고 있다. 가족과 컨테이너에 산다는 아들의 애인을 직접 만나보고 호감을 품으면서도 그녀는 “어째 착 붙는 느낌이 오지 않”음을, 그 이물감이 단순히 “컨테이너 때문은 아니”란 점을 직감한다.

아들의 일기를 통해 두 연인의 관계가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알아채면서 그녀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도 “우울한 안도감”을 느낀다. “현이, 넌 걔의 가난이 싫은 거야. 간단한 얘기 복잡하게 하지 마라.” 끝내 빈부의 아비투스(습속) 차이를 극복 못하는 연애담에, 상류층의 삶의 감각을 보여주는 일상적 에피소드를 여러 겹 덧씌우면서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아로새겨진 계층의 골을 선연히 보여준다.

물질사회 속 비틀린 관계의 양상은 ‘너를 사랑해’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한 재력가의 개인 자산관리사로 고용된 ‘나’는 저조한 실적을 무마하려 7년을 사귀어온 애인 Y를 여동생 친구로 속여 ‘영감’(재력가의 별칭)에게 소개한다.

영감이 Y에게 호의를 품고 물량 공세를 퍼붓는 것은 바라던 바이지만, 영감의 구애에 점차 끌려들어가는 Y를 향한 나의 질투와 원망은 미처 예측 못한 감정이다. 분노와 무기력으로 참담해하는 ‘나’에게 Y가 말한다. “우린 꽤나 멀리 왔어. 돌아서면, 그 순간 우린 둘 다 소금기둥이 되는 거야.” 돈과 욕망을 연료로 폭주하는 영구기관에서 도로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른 다섯 편은 욕망의 문제에 집중한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의대 출신 영화감독 ‘나’와, 평생 그를 주눅들게 한 의사 친구 P의 이야기다. 주체 못할 재능과 욕망 속에 몰락해가는 P와, 그를 의식하며 꾸려온 자기 삶을 지키고자 친구의 추레한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려 하는 ‘나’의 전도된 관계가 삶을 추동하는 욕망의 본질을 들춘다.

어긋난 욕망의 비극적 이중주는 ‘들소’와 ‘매미’에서도 들을 수 있다. ‘바람결에’는 한 불임부부의 거듭된 인공수정 시도가 정상가족 회복의 욕망에서, 파탄난 결혼생활을 기신기신 잇는 수단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묘파한다.

안정된 서사 구조, 미세한 정서를 포착해내는 문장이 정씨의 작품을 빛낸다. “계층이나 직업을 묘사할 때 입체감을 주려 디테일 리서치를 많이 한다”는 작가의 성실성은 의사, 영화감독, 조각가, 대학강사 등 작품집 속에 등장하는 다종한 전문직 종사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증명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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