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시험대 위에 올랐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라는 '공공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선진국들이 '달러'라는 무기에 힘을 실어주려고 하는데, 정작 달러가 기대만큼 화력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일본 오사카에서 막을 내린 'G8 재무장관' 회담에서 선진 재무장관들은 미국의 강(强)달러 정책을 지지키로 합의했다.
물론 G8 재무장관들이 환율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유가 및 식료품 등 상품가격 상승이 글로벌 경제성장에 위협이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말로 고유가발(發) 인플레이션 위협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은 "강한 달러는 미국의 이익이 된다"는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알렉세이 쿠드린 재무장관도 "달러 약세는 유가급등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며 "강한 달러 정책은 G8 국가들의 가장 큰 당면 과제인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유용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연초만해도 달러화의 방향에 대한 선진국들의 입장은 각국마다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예상수위를 넘어 세계경제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을 만큼의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자, 결국 선진국들도 좋든 싫든 '강한 달러'를 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달러화 약세(유로화 강세)로 수출이 타격 받아 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고 판단, 강한 달러 정책을 더욱 지지하게 된 것으로 분석됐다.
사실 '약한 달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유가를 부추겼다. 첫째, 가치가 떨어진 달러화에 실망한 국제투자 자본들이 상품쪽으로 몰리면서 유가가 급등했다. 둘째, 원유가격은 달러화로 표시되는데,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산유국들은 실질 원유판매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계속 유가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달러화가 강해지면 그만큼 유가는 안정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G8 재무장관들의 강달러 정책 지지가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유럽중앙은행(ECB)이 요지부동이다. 달러화가 강해지려면 유로화가 떨어져야 하고 그러려면 유로존 금리가 내려가야 하는데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하다. 실제로 그 동안 유럽 각국 정부는 ECB에 "유로화가 너무 강세"라는 불만과 함께 금리인하를 계속 요구해왔으나, ECB의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것도 달러화 강세의 조건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금리인하행진을 잠정 중단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곧바로 금리인상 카드를 꺼낼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추락하는 주택가격, 커지는 모기지 부실 위험, 늘어나는 실업자 등 미국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 만큼이나 경기하강압력 또한 크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론 펀더멘털의 문제다. 환율은 경제의 얼굴이고, 강한 달러화가 지탱되려면 미국경제 자체가 강해져야 한다. 하지만 미국경제는 '쌍둥이적자(경상적자+재정적자)'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다. 신음하는 미국경제가 달러화를 강하게 만들 체력은 없어 보인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경제연구실장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강달러로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합의가 당분간은 영향력이 있을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속적 효과를 내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원ㆍ달러환율 전망도 같은 맥락이다. 한 시장관계자는 "G8 합의영향으로 당장은 달러 강세(원ㆍ달러환율 상승)가 예상되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금리정책과 경제 펀더멘털의 영향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6일 원ㆍ달러 환율은 소폭 상승한 1,043.90원으로 거래를 시작했으나 결국 정부 개입으로 전주말보다 2.70원 하락한 1,038.30원에 거래를 마쳤다.
■ G8 (Group of 8; Group of 7 and Russia)
G8(주요 8개국 또는 선진7개국+러시아로 일컬음)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서방 선진 7개국(G7)과 러시아 등 8개국 모임이다. 매년 한 차례씩 각국 대통령이나 총리가 참가하는 G8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재무장관들이 모여 세계 경제 향방 및 경제정책을 논의하는 G8 재무장관 회담도 1년에 네차례씩 개최하고 있다. 중앙은행 총재는 1년에 두세 차례씩 회동해 세계 경제 방향과 정책 협조 등을 논의한다.
최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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