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통해 확인된 ‘촛불의 위력’때문일까. 촛불을 이용한 또 다른 집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내용도 정부의 방송정책 비판, 회사의 정리해고에 대한 반발 등으로 다양하다.
13일 밤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네티즌 모임 회원들이 촛불 300여 개를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를 규탄한다며 모인 이들은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가 ‘표적감사’라며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촛불을 들고 계속 나올 것”이라고 밝힌 이들은 주말에는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같은 시각 강남의 한 회사 앞에서는 정리해고 방침에 반발하는 노조원 100여 명이 집회를 열었다. 이들의 손에도 촛불이 들려 있었다. 지난달 한 보수 청년단체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면서 촛불을 이용했다.
생존권 투쟁에도 촛불이 쓰이고 있다. 13일 전국노점상연합회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21차 전국 노점상 대회’를 연 뒤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다음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쇠고기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촛불을 이용하진 않았지만 자신들의 입장과 주장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를 통해 일반에 알리려는 시도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촛불집회가 쇠고기 이외의 다른 이슈를 다루는 집회나 시위에 사용되는 현상에 대해 “시위 방식은 그 시대, 그 상황에서 가장 잘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수렴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가 위력을 발휘하자 촛불을 든 저항운동이 쇠고기 이외의 다른 이슈를 다루는 시위나 집회로 전이돼 하나의 ‘시위 레퍼토리’로 정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당장 보수단체의 맞불 집회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이날 오후 자유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국정 흔들기 중단 촉구 국민대행진’에 참가한 8,000여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은 서울역에서 청계광장까지 거리시위를 했고, 고엽제 환자 구급대 차량 100여 대로 차량 시위를 했다. 보수단체가 거리ㆍ차량 시위를 하기는 이날이 처음이다.
특히 이날 오후 여의도 MBC 앞으로 이동한 고엽제전우회 회원들 일부는 MBC 난입을 시도하다 전경과 충돌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촛불 집회에 자극받은 보수단체가 거리 시위를 하기 시작하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 참가자들과 물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커질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권형기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촛불집회가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정부가 손을 댈 수 없는 통제불능(ungovernability)의 단계”라고 규정하며 “촛불집회가 상시화 경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시민의 열정을 정책으로 유도해야 할 정당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모든 사안을 촛불집회 방식으로만 해결하려 들면 대의민주주의는 완전히 무시 받게 될 것”이라며 “정부에 국민 뜻을 충분히 전달한 만큼 정부에 해결책을 내놓을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이영창기자 anti0912@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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