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귀국'이라는 강수를 던진 우리 대표단을 미국측이 붙잡았다. '협상 계속 → 귀국 → 체류 연장' 등 우여곡절을 거듭한 끝에 다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된 것이다. 아쉬운 쪽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협상의 철칙. 미국측이 한 발 물러서면서 협상이 상당 부분 진척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게 하는 배경이다.
그렇다고 사태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미국측이 몇 걸음 양보한다고 해도, 우리 정부가 원하는 수준에 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만큼, 지금 두 나라 정부의 인식 간극은 상당해 보인다. 이제 협상은 중대 고비에 섰다
팽팽한 기 싸움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는 16일 당초 귀국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 "미국측이 회담을 그만하자고 한 적은 없었다. 순전히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우리측 협상 대표인 김 본부장이 일방적으로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귀국행을 택했다는 얘기다.
귀국 선언은 우리 측의 고도의 협상 전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두 차례 협상에서 양측은 상호 만족할 만한 해법을 도출하는데 협조하기로 했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지만, 만약 협상 진전이 있었다면 굳이 일방적으로 귀국을 선택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정부 안팎에서는 우리 대표단이 미국 측에 상당히 강력한 수준의 최후 통첩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유력하게 흘러 나온다.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자, "더 이상 협상은 없다"며 재협상 등 '벼랑 끝 전술'을 편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 측이 우리 대표단의 귀국을 만류한 시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장관급 회담이 더 필요하다"며 우리측에 연락을 취한 것은 김 본부장이 귀국을 위해 뉴욕으로 이미 이동을 한 뒤였고, 뉴욕발 귀국 비행기표까지 이미 예약이 된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 대표단의 예상치 못한 초강수에 다급해진 미국 측이 사태 수습에 나섰을 거라는 관측이다.
장밋빛 전망만은 아니다
우리 대표단의 귀국을 만류하고 나선 만큼, 미국측이 지금까지보다는 진일보한 대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양국 모두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그렇다고, 향후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절박하기로 따지자면, 우리측이 훨씬 더 강할 수 있다. 극한 사태로 치닫는 국민 비판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재협상 같은 추가 협상'을 이끌어내야 하는 처지다. 당장 파국은 면하자고 발길을 돌려세우긴 했지만, 미국측이 무한정 양보만하고 나설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쟁점은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에 대한 미국 정부 보증을 원하는 우리측과 정부 개입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 미국측의 이해를 어떻게 절충하느냐다. 양국의 부담을 덜면서도 실질적으로 30개월령 미만 쇠고기 수출을 제한하는 수출증명(EV)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을 도출해야 하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가 "상당히 기술적인 문제다.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민간 육류수출업계가 스스로 30개월 미만 조건의 '한국 EV 프로그램'을 미국 정부에 제출하고 미국 정부는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미국측은 이 역시 상당히 부담스러운 눈치다. 경우에 따라선,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와 기 싸움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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