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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성난 네티즌을 누가 막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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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성난 네티즌을 누가 막으랴

입력
2008.06.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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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나라는 온통 성난 군중, 아우성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느낌이다. 사실 성난 군중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는 않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다가 궐기하여 역사의 새 장을 연 일이 무수히 많았다.

성난 군중은 이제 성난 네티즌으로 바뀌었다. 세계 언론은 이 진기한 현상에 주목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서울에서 분노의 불이 타오른다’고 타전한다. ‘붉은 악마’에 이어 세계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한류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 인적 저변ㆍ매체 다양해진 군중

1987년 6월 10일 광장에 등장하여 비토그룹의 국민적 확산을 상징한 것이 넥타이부대였다면 이젠 소년소녀 어린 학생들과 유모차부대가 성난 네티즌의 저변확대를 상징한다. 키워드는 공식정치와 기성언론의 신뢰 상실, 대안 정치와 대안 언론의 탄생이다. 휴대단말기와 UCC, 블로그, 인터넷으로 무장한 독립방송, 독립언론같은 디지털 프리랜서들이 광장을 지배한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성난 네티즌은 21세기 새로운 민(民)의 대두로도 읽히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메울 일종의 직접행동의 대안으로도 해석된다. 확실히 아둔한 정부와 당리당략만 일삼는 정치권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촛불민주주의의 불안한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같은 맥락에서 인터넷 집단지성보다는 '익명의 집단극성'이 더 두드러진다는 힐난도 나온다. 최근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은 왜곡과 편향을 우려하여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내용 편집을 4개월간 잠정 중단했다고 한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촛불문화제를 일컬어 ‘위대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며 되기 어려운 일을 되게 한 점에서는 위대하지만, 정말 중요한 다른 문제에서도 이런 게 통하게 된다면 끔찍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포퓰리즘'이라는 진단엔 되씹어 볼 구석이 있지만 일리가 없지 않다. 촛불시위로 항의나 비토를 할 수는 있지만 대안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정치적 결정이나 정책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을 지울 수도, 제재를 가할 수도 없다.

아날로그 방식 진압 위주로는 막을 수 없다. 물대포를 쏘고, ‘명박산성’이라는 웃지 못할 이름을 얻은 컨테이너벽을 치며, 주동자 또는 난동자라는 범주를 씌워 ‘짐마’라는 이름의 버스에 태워 연행해 보지만, 성난 누리꾼들의 집단지성은 억제되지 않는다.

집단지성은 사회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인지하는 능력이 아니라 환경변화나 위기, 위협에 적응하여 생존해 나가는 능력이다. 성난 누리꾼들의 집단지성은 도덕적 잣대, 특히 기성질서에 터 잡은 민주시민의 덕목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억누를 수도, 설득할 수도 없다.

예방의 아이디어는 유효하다. 누리꾼들이 성나기 전에 손을 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네티즌이 성내는 메커니즘에 대해 정부가 디지털 감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진화(共進化)해 나간다는 조건이 붙는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는 해법은 기성 대의정치 메커니즘을 활성화하는 방도일 것이다.

촛불이 모이기 전에 더 활발하게 민의를 수렴하고 민심 표출 기회를 열어 주어야 한다. 공청회 같은 행정절차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빼놓을 수 없다. 인터넷 상의 아고라 못지않은, 민회에 손색없는 공청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의 수효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 디지털 감수성 공진화가 중요

그런 방법으로도 성난 네티즌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 시대가 안은 가장 큰 고민거리일 것이다. 벌써 여러 번 자신들의 군집효과, 즉 생생한 군중권력의 힘을 맛본 네티즌들은 그 농성, 승리의 추억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의제를 기반으로 하는 공식 정치가 자신들의 요구를 듣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다시 또 촛불 들고 광장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괴리와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부와 정치권이 험난한 정책여건에서도 민심을 듣고 문제를 제대로 인식해 진지하게 대처해 나간다면, 적어도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 미래의 불안을 다소라도 완화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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