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지리산 칠선계곡 비선담 통제데크의 문이 열렸다. 비선담 통제데크는 칠선계곡에서 등산객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구역(추성주차장 기점 4.3㎞)의 끝. 이곳부터 천왕봉까지 5.4㎞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예약자에 한해 지정된 시간에 산을 탈 수 있는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이다.
통제데크를 벗어난 순간 탐방로는 없어진다. 산기슭 울창한 나무아래 희미하게 남기 시작한 길은 이끼 낀 바위들, 산죽 군락지 사이로 난 미로로 끊어질 듯 이어지다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군데군데 쓰러진 아름드리 고목에 막힌다. 주민인 지리산 지킴이(가이드)의 뒤를 바짝 따라 붙지 않으면 일반 등산객은 십중팔구 천왕봉으로 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1999년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돼 10년간 사람의 발길을 차단한 이곳엔 등산로는 사라졌지만 많은 생물들이 늘거나 새로 생겨났다. 다양한 생물종의 보고(寶庫)가 된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칠선계곡 특별보호구역의 2002년과 2007년 자연자원모니터링을 비교한 결과, 이 기간동안 식물 68종, 조류 7종, 파충류 4종, 양서류 1종, 고등균류 13종,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27종이 증가했다.
포유류로 담비와 하늘다람쥐, 어류는 한반도 고유종으로 1급수에만 사는 왕종게 쉬리 꺽지 등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 동물로 우리나라 고유종이지만 거의 찾아보기 힘든 얼룩새코미꾸리가 관찰된다. 최근에는 비선담에서 노는 물까마귀가 촬영되기도 했다.
출입통제 효과는 확실히 나타났다. 멸종위기 식물로 감소하던 만병초, 땃두릅나무, 산겨릅나무, 백작약 등 보호종의 개체수가 증가하고 군락지가 복원됐다. 특히 해발 1,915m의 북사면에 자리잡은 칠선계곡은 아고산대(亞高山帶) 식물들이 생육하는 원시림을 간직했다.
해발 1,300~1,800m에는 멸종위기 식물인 자주솜대 군락지가 있고, 주목나무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좀쪽동백나무 등 침엽수이 자라고 있다. 마폭포(추성마을 기점 8.1㎞)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20분을 오르면 등산로 한가운데서 어른 세 명이 겨우 감싸안을 정도로 굵은 주목을 만난다.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이 주목은 상처하나 없이 깨끗하다. 지리산국립공원 박은희 박사는 “오래된 주목은 보통 몸체 가운데가 갈라져 빈 곳이 생기는데 칠선계곡의 주목은 그런 것이 없다”며 “소백산 등 주목 군락지보다 이곳이 훨씬 생태환경이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년동안 사람과 차단돼 원시적 생태환경과 자연자원을 복원해 온 이곳에도 개발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다시 위협받고 있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를 개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려는 욕구때문이다.
5월 탐방예약ㆍ가이드제를 도입해 특별보호구역을 제한적으로 개방한 것도 주민들의 요구가 컸던 까닭에서다. 탐방예약제는 1주일에 4일(월ㆍ화ㆍ목ㆍ금요일)간 하루 1팀(정원 40명)이 운영돼 최근까지 600여명이 다녀갔다.
하지만 탐방예약제가 실시된 이후 사람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등산로 바위의 돌 이끼가 벗겨지고, 등산로 주변 보호수종의 어린 나무들이 점점 사라지는 등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추성마을의 한 주민은 “특별보호구역을 완전개방하는 것은 주민들도 반대하지만 현재 일주일에 기껏해야 160명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탐방횟수와 인원을 더 늘려 좀 더 많은 국민들이 칠선계곡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수 국립공원 지리산사무소장은 “탐방예약제는 자연자원의 보전과 이용이라는 상반된 두 가치를 조화시키는 시험”이라며 “마을주민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모니터팀을 구성, 앞으로 2년간 칠선계곡 특별보호구역 탐방예약ㆍ가이드제의 환경적 영향 등을 관찰한 뒤 개방의 횟수, 인원 등을 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동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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