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산> 이 16일 막을 내렸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 정조를 끝으로 사실상 조선왕조의 번영은 종말을 고하고 국망(國亡)의 길을 걷는다. 외척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세도정치가 60년 이어졌고, 그것이 끝나자 숨돌릴 틈도 없이 발톱을 치켜들고 달려든 열강 앞에 왕조는 숨통이 끊기고 만다. 이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우외환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 이른바 지도자 ‘3인방’인 대원군, 고종, 명성황후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오인환 전 공보처장관의 생각이다. 도대체 그들의 위기관리 능력이 어떠했길래 그 시대가 ‘치욕의 역사’가 됐을까.
▦5년간 공들여 펴낸 <고종시대의 리더십> (열린책들 펴냄)에서 그는 그 실체를 하나하나 짚어낸다. 먼저 대원군. 삼정(三政) 개혁, 서원 철폐에서 보듯 과단성과 역동성으로 왕권의 위기를 극복했고, 경복궁 중건으로 인한 여론악화의 대내위기를 병인양요라는 대외 위기로 반전시켰다. 고종시대의>
그러나 ‘계속 닥칠 비슷한 형태의 위기에 대한 적절한 학습효과가 없었던 게 한계이자 불운’이었다. 그의 위기관리 실패는 무엇보다 과거지향 성향 때문이었다. 그것으로는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없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더구나 복수심이나 적개심에 치우친 지도자는 단기간 위기관리는 할 수 있어도 그 끝이 좋을 수 없다.
▦그럼 명성황후는? 고종의 오른팔로 권력 유지와 외교전에는 뛰어난 감각과 위기 관리능력이 있었다고 보았다. 반면 통치영역에서는 빈곤을 드러내는 위기 관리능력의 불균형으로 결국 고종의 장애물이 됐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고종 역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 일찍이 외교에 눈을 떴지만, 국제정치의 메커니즘을 너무 몰랐다. 체제위기로까지 번진 동학농민봉기가 말해주듯 정말 백성을 위하는 관리가 없었던 것도 그의 불운이었다. 뒤늦게 노련한 외교력을 발휘해 보지만 그 역시 미국 의존 일변도로 실패를 자초했다.
▦위기는 극복도 중요하지만, 위기의 빌미를 줘서는 안 된다. 저자는 빌미론의 특징으로 작은 위기를 해결하려다 더 큰 위기를 자초하고, 위기관리의 완급과 선후와 경중을 따지는 데 미숙하거나 시야가 넓지 못하며, 특히 대외관계에서 위기관리 능력에 한계가 있었던 데다, 그 주체가 정권의 지도층인 점을 꼽았다.
결코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위기를 자초한 이명박 정부가 곱씹어 볼 만한 지적이다. 성공한 역사에서만 배울 게 있는 게 아니다. 실패한 역사에서도 배울 것은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마음으로 쓰여졌을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