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늘 강자를 갈망한다. 일단 누구든 왕좌에 오르면 따르는 무리(투자자)가 구름처럼 모이고 권세를 등에 업고 수익을 얻으려는 (투자)자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듯 흥하면 쇠하기 마련, 해외펀드라고 다를 리 없다.
지난해 해외펀드의 왕권은 중국펀드가 쥐고 있었다. 엄청난 수익률(최고 60%대)을 무기로 시대를 풍미했지만 권좌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중국펀드는 잠시 재기를 꿈꿨지만 최근 다시 바닥을 뚫으면서 추종자들에게 지옥을 맛보게 하고 있다.
중국펀드의 몰락 이후 해외펀드는 베트남 인도 브라질 러시아 중동 대만 등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다. 중국펀드의 대안으로 반짝 떴던 베트남펀드는 베트남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제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틈을 비집고 올해 대항마로 나선 게 러시아와 브라질펀드다. 둘은 ‘러브’ 펀드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해외펀드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엔 중국과 베트남이 무너뜨린 아시아의 위상을 드높일 요량으로 대만펀드까지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해외펀드의 전체적인 부진 속에 시장이 내세운 대안인 셈이다.
그러나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이들 펀드의 수익률 및 자금유입 현황이 최근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러브만’(러시아 브라질 대만) 생각하다간 자칫 크나큰 실연의 아픔을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자원부국 이미지의 브라질과 러시아펀드는 고유가가 몰고 온 세계 경제의 위기를 역으로 이용해 득을 봤다. 그러나 브라질과 러시아 증시는 오랜 상승의 피로가 역력하다. 브라질 보베파스지수와 러시아 RTS지수는 고점대비 10%가까이 빠진 상태다. 투기성 자금 유입에 따른 과열 우려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 탓이다.
실제 브라질과 러시아펀드의 최근 1주일 수익률은 모두 마이너스다. 두 자릿수 수익률을 자랑하며 승승장구 하던 몇 달 전 사정과는 딴판이다.
16일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13일 기준 1주일 수익률은 러시아펀드가 -0.61~-2.61%, 브라질펀드가 -1.01~-3.22%다. 브라질펀드의 대다수는 1개월 수익률도 마이너스다. 10%대인 3개월 수익률만 보면 다른 해외펀드보다 앞서 여전히 러시아와 브라질펀드가 매력적이지만, 앞으로 상황까지 보증하지 못한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낙관론이 건재하긴 하지만 경계론이 스멀스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승훈 한국투자증권 자산전략부장은 “인플레이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관련(러시아 브라질) 펀드들도 앞으로 얼마든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장기적인 자산배분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유효하지만 단기적인 접근은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소문난 잔치만 믿고 지금 섣불리 들어갈 펀드는 아니라는 얘기다. 아울러 구조적 변화보다는 단순히 원자재 가격 상승이 증시와 경제를 끌어올린 러시아와 브라질은 값싼 노동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보단 ‘하수’라는 분석도 있다.
4월말부터 아시아펀드의 새로운 마스코트로 나선 대만펀드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1개월 수익률이 -10%안팎인데다 자금유입까지 사실상 지지부진 하다.
한 증권사의 관계자는 “대만은 정보기술(IT)이 주축이 된 우리나라와 비슷한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어 차별화나 매력이 떨어진다”며 “소비가 늘어난다 해도 양극화가 심각해 고소득층은 선진국 물품이나 다른 나라의 명품을 사들이는 등 대만 경제가 자체 발전을 이루긴 힘들어보인다”고 말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차라리 국내 주식형펀드에 눈을 돌리라는 조언도 있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가 조정 이후 상승을 한다면 산업구조는 비슷하지만 내용과 질은 대만보다 앞선 우리나라 증시가 훨씬 더 유리하다”고 전망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