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잘못 사는 사람들> . 현 청와대 수석이 학자 시절인 몇 년 전 출간한 평론집의 제목이다. 우리 사회에는 제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방향이 잘못되어 있어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폐만 끼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주장이다. 열심히>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정치를 몰랐다는 부분에 대해 반성한다”고 고해성사를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자 떠오른 것이 바로 위에 소개한 책이었다. 이 대통령이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아 이 학자가 우려했던 ‘열심히 잘못 사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되고 만 것이다.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니
아니 정확히 표현해 ‘열심히 잘못 다스리는 대통령’, ‘열심히 잘못 하는 대통령’이 되고 만 것이다. 모시는 대통령이 자신이 비판한 사람이 되고 말았으니 역설이다. 안타까운 것은 일찍이 선견지명을 가지고 열심히 잘못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경고한 수석이 왜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잘못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충언을 드리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가장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열심히 잘못 사는 사람들이다. 잘못됐지만 열심히 살지 않고 게으르게 살면 피해가 적다. 그러나 잘못 살면서 열심히 살면 그 폐해는 몇 배로 늘어난다. 고문의 대명사인 이근안은 다른 고문기술자보다 열심히 고문을 해 문제가 커진 것이고 전두환도 1980년 봄 광주에서 너무 열심히 양민들을 학살해 광주의 비극이 생긴 것이다.
정작 충격적인 것은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는 이 대통령의 고백이다. 그만한 나이를 살고도, 특히 굴지의 대기업을 수년 간 운영하며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려 보고도, 세상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제일 무서운 것이 열심히 잘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이처럼 단순한 사실도 모르는 사람에게 우리가 나라를 맡겼단 말인가? 답답한 일이다.
사실 개인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통령이 열심히 잘못하면 정말 나라가 거덜이 나고 만다. 이는 대통령론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바버의 유형론이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대통령을 성격과 활동성이라는 두 기준으로 분류하는데, 가장 바람직한 것은 존 에프 케네디처럼 긍정적이면서 활동적인 대통령이다. 그러나 최악의 대통령은 부정적이면서 소극적인 대통령이 아니라 부정적이면서 활동적인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부정적이더라도 소극적이면 최소한 대형 사고는 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식하고 용감하면서 부지런한 지도자, 무식하고 용감하면서 부지런한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에게 따라다니는 부지런함과 추진력이라는 평가와 불도저라는 별명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우려는 다른 곳에 있다. 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했고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를 갖게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원망하고 촛불시위를 주사파와 연결시킨 이 대통령의 발언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공기업, 준정부기관, 언론기관에 대한 코드인사를 보면 이 대통령의 반성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홍보용 반성, 즉 악어의 눈물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갖게 한다.
진정 반성하고 있는지 아리송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더 깊은 무덤을 파는 것이다. 이제 ‘열심히 잘못 하는 대통령’은 끝내야 한다. 물론 이 대통령이 ‘열심히 잘 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지 못 할 바에는 차라리 ‘게으르게 잘못 하는’ 대통령이 되는 편이 국민들에게 덜 불행한 일이다. 참고적으로 나 역시 열심히 잘못 사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자주 돌아다 본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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