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블로크 / 한길사
1944년 6월 16일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가 리옹 북동쪽 벌판에서 26명의 레지스탕스와 함께 독일 게슈타포에 의해 총살당했다. 58세였다.
블로크는 역사가이자 행동가였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53세의 소르본대 교수, 여섯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자원입대한다. 자칭 “프랑스 군대에서 가장 나이 많은 대위”였다.
이듬해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후에도 그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다 1944년 3월 체포됐다. 그의 최후에 대해 당시 독일군의 확인사살에도 기적적으로 생존한 두 사람의 증언이 남아 있다.
블로크 옆에서 떨고 있던 16세의 소년이 물었다. “아프겠죠?” 블로크는 소년의 손을 꼭 쥐며 “그렇지 않단다, 얘야. 조금도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위안의 말을 해준 뒤, 동료들 중 제일 먼저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블로크의 책은 <역사를 위한 변명> 이다. 그가 1941~1943년 전쟁의 와중에서 틈틈이 쓴, 미완의 그리고 최후의 저작이다. “아빠, 도체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저에게 설명 좀 해주세요”라는 아들의 물음이 이 책을 쓰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고 블로크는 밝히고 있다. 역사를>
“역사라는 말은 매우 오래된 단어이다.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때로는 말만 들어도 염증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사전의 어휘목록에서 이 말을 지워버렸으면 하던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블로크는 역사에 대한 이런 불신을 반박하고, 역사란 켸켸묵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시간 속의 인간들에 관한 탐구’이며, 역사학은 죽은 학문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내다보는데 도움을 주는 진정한 실용주의적 학문임을 해명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 감수성’이야말로 ‘인간학으로서의 역사학’의 필요조건이다. 1979년 번역판이 나와 당시의 시대상황에 절망하던 이 땅 젊은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던 이 책이, ‘실용’이 모든 것에 우선시되는 지금 한국사회에 여전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때문이겠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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