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표준계약서요?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광명 역세권 현장에서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이병윤(53)씨는 한숨을 내쉰다. 정부가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을 통해 지난 5월부터 도입했다는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문서다.
건설기계 노조가 줄기차게 요구하는 표준계약서는 뭘까. 덤프트럭 운전자에게는 일종의 최저임금제를 명문화하는 서류다. 현재 이씨와 같은 덤프트럭 차주들은 건설업체로부터 하루에 50만원(25톤 화물차 기준)을 받아 기름값과 각종 부대비용(보험료ㆍ차량수리유지비) 을 내고 인건비를 챙긴다.
문제는 경유값 폭등으로 하루 50만원을 받고도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화물연대 차량처럼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다 보면 50만원 수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표준계약서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업체와 화물차 운전자 간에 ▦8시간 근무 이후 초과근무 수당지급 ▦유류비와 운반비 별도 지급 ▦임대료 현급지급 등을 담아 5월부터 의무화됐다. 이 문서대로라면 유류값 등락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일선 건설현장에서는 사실상 사문서가 다름이 없었다. 약자인 덤프트럭 운전자들이 건설사를 향해 표준계약서 도입을 외칠 만한 힘이 없었던 탓에 결국 노조가 16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건설기계노조 오희택 교육선전실장은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표준계약서가 건설현장에는 전혀 먹히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정부에 수 차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사실상 거의 반응을 보지 않았다"며 파업 배경을 설명했다.
다급했던 정부는 잇따라 건설기계 노조를 만나 표준계약서 조기 정착에 대한 노조 의견을 상당 부분 들어줬다. 국토부 산하기관에는 표준계약서 이행 여부를 월 1회 보고토록 하고 분기별로 현장 실태점검을 실시하도록 했다. 경기도 등 지자체도 민간 건설업체들의 표준계약서 이행여부를 단속키로 했다.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일단 건설기계 노조의 총파업은 이틀간의 상경 투쟁이 끝나는 17일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국토해양부 박상규 건설정책관은 "현재 노조와 크게 쟁점되는 사항이 없어 이틀만에 파업이 끌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기름값을 떠안게 되는 건설업체들이 호락호락 표준계약서에 도장을 찍을지 미지수다. 전국건설노조 김승환 정책국장은 "정부가 말로만 하지말고,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한, 불씨는 계속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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