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이후 지지부진했던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이 다시 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북한이 국교정상화 실무회의에서 기존의 주장을 접고 일본이 요구하는 납치문제 재조사 방침을 수용하면서 꽉 막혔던 양국 관계에 소통의 통로가 생겼다. 일본 정부도 북한의 납치 문제 재조사 약속만으로 최소한이지만 대북 제재 일부를 바로 해제함으로써 향후 협상 전망을 밝게 했다.
지난해 9월 몽골 울란바토르 회의 이후 처음 열린 11, 12일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의의 초점은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하기 앞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문을 받은 북한이 과연 어떤 카드를 내놓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제시한 ‘납치문제 재조사’ ‘요도호 납치범 해결 협력’ 방침은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표시로 보인다. 일본의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재조사가 진전이냐”고 당장 불만을 터뜨렸지만, 6자회담 진행 상황과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한 북한의 기대를 감안하면 북한이 여기서 뒷걸음질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 정부가 납치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일본인은 모두 17명이다. 북한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방북 정상회담 때 이 중 13명의 납치를 인정했다. 하지만 4명은 납치 사실을 부정했고 납치자 가운데도 8명은 숨졌다며 생존자 5명만 ‘일시 귀국’ 형태로 일본에 돌려 보냈다.
때문에 북한이 납치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인 피해자 4명의 진실을 규명하고, 숨졌다고 주장한 8명의 생사 여부를 밝히는 것이 재조사의 핵심을 이룬다. 북한이 요코다(橫田) 메구미의 것이라고 일본에 보낸 유골의 진위 해명도 포함될 수 있다.
1970년 일본항공(JAL) 요도호 납치 후 북한에 거주하는 적군파 요원 4명의 처리는 북한이 일본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해 사실상의 인도(引渡)에 해당하는 중국 등 제3국 추방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일본은 일본인 납치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요원 1명과 납치범의 일본인 처 2명의 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은 우선 납치범과 일본 정부 당국자간 대화를 중개하는 소극적인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요도호 사건을 일본 정부와 납치범 사이의 문제라고 주장해온 데다 납치범 역시 전부터 요구해온 형사처벌 면제 조건부 귀국을 일본 정부와 협상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적 왕래와 북한의 전세항공기, 선박 입항 허용 등 일본의 대북 제재 해제는 북한의 납치문제 해결 의지 표시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이다. 일본 정부는 “상대가 크게 한 발 내디뎌 구체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우리도 크게 내딛는 구체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그대로 적용했다.
북한적 선박의 입항도 북한의 요구에 따라 일본이 인도지원물자를 마련할 경우 이를 실어가기 위한 배를 허용한다는 것이어서 조총련계 재일동포가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을 오가기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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