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13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 시각으로 14일 새벽 슈전 수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최종 담판에 나선다. 정부 내에서는 “이제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는 결연한 기류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번 협상은 출발부터 적잖은 한계를 안고 있다. 촛불 민심이 원하는 ‘재협상’이 아니라 ‘추가 협상’일 뿐이다. 국민대책회의 등은 “무조건 재협상을 해야 한다”며 아예 협상이 시작도 되기 전에 등을 돌려 버린 양상이다.
결국 관건은 실질적으로 재협상에 준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다. 수입 쇠고기의 30개월 미만 보장장치는 물론 쟁점중 하나인 특정위험물질(SRM) 부문까지도 이번 협상 길에서 어느 정도 담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재협상 같은 추가 협상’을 이끌어낸다면 여론에 합리적 이해를 호소해볼 수 있지만, 다시 미봉책에 그친다면 돌이키기 힘든 역풍을 피할 수 없다. 그 땐, 온갖 외교적 불이익을 감수한 재협상만이 유일한 돌파구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 대표단이 이번 추가 협상에서 미국 측에 제시할 카드 중 하나는 별도의 수출증명(EV) 프로그램을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EV 프로그램은 미국 농무부가 각 나라와 맺은 수입위생조건에 맞는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작업장을 감독하는 체계다. 지금껏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쇠고기에도 적용이 돼 온 만큼 프로그램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핵심은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다시 말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출하도록 하는 ‘한국 EV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에 따라 각 수출작업장에서 연방정부 검역관이 준수 여부를 확인토록 하자는 것이다. 검역관의 확인은 수출검역증명서에 명시가 된다. 이렇게 되면, 수입위생조건을 그대로 두면서도 사실상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을 미국 정부 차원에서 보증하는 효과를 거두겠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아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30개월 이상ㆍ미만 여부를 확인해 수출검역증명서에 기재하도록 하는 방안도 여전히 제시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다.
정부의 배수진이 먹혀 들어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자율규제에 개입하는 데에는 상당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 통상 규범 위반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수입위생조건의 성과를 부정하고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모양새다. 향후 다른 수입국과의 협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부담감도 적지 않아 보인다.
설사 미국측이 받아들인다 해도 EV 프로그램만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미국측 검역관의 검역 만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걸러질 수 있다고 장담하긴 힘들다. 양국 업계의 자율 결의에 대해 두 나라 정부가 문서 보장 등 구속력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령 확인이 불가능하거나 수출검역증명서 내용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는 경우 우리측이 수입을 거부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추가 협상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더욱 악화일로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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