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신상명세서를 새로 써서 낼 때 꼭 취미를 쓰라고 하였다. 선생님이 취미를 살펴서 교육 지도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쓰라고 하니 내키지 않아서 대강대강 쓰기가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전혀 하지 않는 일이면서도 보는 사람인 선생님의 마음에 들 것 같은 활동을 써 넣는 동무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취미를 쓸라치면 늘 책 읽기라고 했다. 그런데 조금 나이가 들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책 읽기는 생활이지 취미는 아니라는 견해가 많았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지만 나는 지금도 책 읽기가 취미라고 생각하고 답한다. 가장 자주 하고 재미있게 하는 활동이 책 읽기이므로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책 읽기가 취미라고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뜻한 바 있어 머리 깎고 수행의 길에 들었다. 승려의 길을 걸으면서 신선하다고 할까 충격적인 표현을 책과 큰스님의 말씀에서 접하게 되었다.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한 마리의 학이 될지언정 말 잘하는 앵무새는 되지 않겠다’거나 ‘천 권의 경서를 읽는 것이 단 몇 분 참선하는 것만 못하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부처님의 생애도 책으로 읽고, 가르침도 책에서 보며, 스님들의 언행도 책을 통해 살펴보는데 말씀과 글을 담은 책을 가벼이 여기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표현이다. 고기를 주기보다는 통발을 주어 고기 잡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가려움을 해소하려면 신을 신은 채 그 위를 긁기보다는 신과 양말을 벗고 씻어내고 긁어야 정말로 시원하다는 말도 있다. 모두 이론보다 실천을 무겁게 여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큰스님들께서 말씀하고자 하신 참뜻이었을 것이다.
마음은 표현이 불가능한 물질이고, 물질은 나타낼 수 있는 마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느낌이 어떠한가?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행간에 숨은 참뜻을 찾아내지 못하면 마음과 물질을 한 줄의 논리로 나타내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책 읽기와 마음 닦기가 겹쳐져야 비로소 이해될 것이다.
책 속에 들어 있는 가르침을 눈으로 보면서 마음으로 조근조근 곱씹어 보자. 그러면 그것이 명상으로 이어지고 또 마음 닦는 공부인 참선으로까지 이어져 깨달음은 어느덧 깨끗이 씻어낸 발 끝처럼 시원스럽게 다가와 있을 것이다.
법현 스님ㆍ열린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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