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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영어가 뭐길래

입력
2008.06.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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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영어가 ‘종교’나 다름없죠. ‘숭배’해야 ‘출세’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최근 동남아 조기유학 실태를 현지에서 취재하면서 필리핀 마닐라에서 대면한 30대 후반의 학부모 A씨는 동남아 조기유학 ‘광풍’의 이유를 이런 식으로 분석했다. 간단히 말하면 영어 때문에 부부가 ‘생이별’을 하고, 아버지와 자식이 헤어지는 조기유학을 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이 곳에서 영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돕는 도구로만 인식되지는 않아요. 영어가 유학 생활의 성패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돼버렸지요.” 영어를 잘 하는 학생은 물론이고 엄마도 덩달아 존경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 경우는 비참할 정도다. 유학을 온 지 1년이 지났지만 말문이 트이지 않으면 엄마의 채근은 점점 심해진다. 유창하게 영어로 떠드는 학생과 비교를 하게 되고, 자녀들은 점점 주둑이 든다. 교육의 목적이 오직 영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조기유학생들에게 전인교육이니, 인성교육이니 하는 말들은 사치다. 현지에서 만난 한 일본인 여성은 “한국 엄마들 정말 대단하다. 영어 하나 때문에 어떻게 수년 씩 가족과 떨어져 살 수 있느냐”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많은 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조기유학을 오게 된 ‘진짜’ 이유도 당연히 영어 때문이다. 동남아 현지 학부모들은 겉으로는 “공교육이 뒷받침을 하지 못해 어쩔 수 없었다”는 말했다. 한국 교육에 대한 불신이 조기유학을 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180도 다른 소리를 한다. “영어를 못하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세상 아니냐.”, “너도 나도 보내는데 우리 애만 안 보낼 수 없었다.”…

그랬다. 조기유학의 시작은 영어 였고, 끝도 영어 였다. 영어가 조기유학생의 ‘조기귀국’과 ‘적기귀국’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다. 그렇더라도 씁쓸함은 지우기 힘들었다. “영어권 국가에 가기만 하면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조기유학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학생들이 상당수 였고, 이들은 대부분 실패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조기유학 러시를 몰고 온 영어의 위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침은 조기유학 붐에 기름을 부었다. 이 때문에 정부도 뒷짐을 져서는 안된다. 말로만 조기유학 자제를 강요하는 것은 영어의 늪에 빠진 학부모와 학생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강철원 사회부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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