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아니 토마스 지음ㆍ이순주 옮김/문학수첩 발행ㆍ424쪽ㆍ1만5,000원
“철저하게 조작된 이미지라 해도 좋다. 명품 브랜드가 생산하는 꿈의 한 조각이나마 가져보게 해 다오.” 한국인들의 새로운 집단 무의식이다.
21세기 한국, 과소비는 유한 계급 혹은 속물이라는 칙칙한 이미지와 성공적으로 결별했다. 그것은 ‘명품’ 혹은 ‘럭셔리’라는 이름으로 업 그레이드 돼,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지적한 대로 구별짓기라는 사회학적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내고 있다.
상류층, 나아가 VVIP(초우량 고객)임을 당당히 인증해 주는 고가 혹은 초고가의 물건으로서의 럭셔리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비아냥의 대상이기 십상이었다. 더러는 ‘된장녀’라는 이름으로 폄하 되기도, 기업형 나이트 클럽들의 ‘럭셔리 불륜 마케팅’이란 이유로 질타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이내 하나의 당당한 트렌드로 살아나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매체들은 “초호화 최고급 아파트는 이제 당당한 선망의 대상”이라며 사람들을 충동하고 있다.
그 누가 루이뷔통, 구찌, 프라다, 조르지로 아르마니, 에르메스, 샤넬 따위를 선뜻 거절하랴? 그 같은 것들을 몸에 밀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곧 그 자의 경제적ㆍ정치적ㆍ사회적 지위와 자존심과 직결되지 않던가? 심리적ㆍ사회적 효과에다 유무형의 효용까지 감안한다면 1,570억 달러라는 세계 명품 시장 규모마저 소박해 보일 정도다.
<뉴스위크> 파리 지국의 문화 패션 담당 기자 출신인 저자는 정공법을 택했다. 공장 견학은 물론, 업계의 비밀을 듣기 위해 비행기 여행도 마다 하지 않았다. 책속에 나열된 명품 업계의 비화들이 현장감으로 빛나는 까닭이다. 뉴스위크>
명품의 유행은 본질적으로 30~50대 고소득층인 여성들(아시아에서는 25세부터가 명품의 주고객이다)이 얼마나 기꺼이 돈지갑을 열 수 있나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 기점은 능력 위주의 사회로 본격 재편되던 1980년대다. 경제력을 갖춘 새로운 여성 집단, 즉 독신 여성 중역들이 그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녀 할 것 없이 결혼을 늦추고 자유를 만끽, 스스로를 소비의 중심으로 들어 앉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에게 핸드백은 소품용 가방이 아니다. “핸드백은 인생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고, 꿈꾸게 해 주고, 자신감을 주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누구나 다 명품 핸드백 한 개 정도는 구입할 수 있죠.”(208쪽). 그러나 동시에 명품은 악몽의 다른 이름이다.
세계관세기구(WCO)는 모조품이 패션 업계에 끼치는 연간 손실이 97억 달러로 그 대부분이 마약 거래, 인신 매매, 테러리즘 등을 실행하는 데 쓰인다고 밝혔다. 또 향락 산업의 강력한 결제 수단이기도 하다. 명품은 모조품이 가장 성행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명품의 공장으로 떠오른 것은 그래서다.
멋쟁이들이 은근히 브랜드를 내세우며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핸드백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고 책은 폭로한다. “최고급 브랜드의 핸드백들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각 브랜드는 자기네 제품이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절대 누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는 기밀 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242쪽) 그 곳 공장에서 24시간 교대조로 일하던 직공들은 지친 나머지 길에 쓰러져 사망한다.
책의 시선은 향락의 도시에서 고급 가족 휴양지로 변신한 라스베이거스를 향한다. 단위 면적당 매출이 미국에서 항상 1~3위를 차지하는 이 곳은 공간, 교통, 인구 배치 등 모든 환경이 명품 브랜드를 위해 존재하도록 짜여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유동적인 중산층 시장”(288쪽)인 미국을 상징하는 도시로 라스베이거스가 거듭난 비밀이 명품에 있었다.
세금 정책, 주가 상승, 인터넷 붐 등 명품이라는 욕망 코드를 성공적으로 확산시킨 주역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훌륭한 삶’이란 많은 돈, 제 2의 자동차, 별장, 수영장, 고급 의상 등의 물질적 기준으로 직결된다. 저자는 현재 패션지 <하퍼스 바자> 의 호주판 파리 특파원으로 있다. 하퍼스>
장병욱 기자 aj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