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일 내놓은 고유가 대책의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정부는 주유소 상표표시제(폴사인제)를 없애고, 대형마트에서 휘발유와 경유 판매를 허용하는 등 경쟁을 통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정유업계와 소비자 단체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정부 대책의 실효성과 해법을 3회에 걸쳐 점검해 본다.
정부 고유가 대책의 핵심 중 하나는 ‘폴사인(Pole Sign)제’ 폐지. 특정 정유사의 석유제품만 판매토록 한 폴사인제를 없애 한 주유소에서 여러 회사 제품을 팔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정유사와 주유소의 배타적 거래를 원천 봉쇄, 정유사간 가격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기름값을 떨어뜨리겠다는 계산이다. 실제 주유소들이 다양한 회사의 기름을 골라서 살 경우 정유사간 경쟁에 따른 가격 인하는 가능하다.
문제는 인하 폭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지 않고 있지만, 정유사와 주유소들의 수익구조를 살펴보면 가격 인하 폭을 짐작할 수 있다.
4대 정유사가 지난해 국내에서 기름을 팔아 남긴 수익은 2조1,927억원에 달하지만, ℓ당 영업이익은 15.2원에 불과했다. 정유사들이 영업이익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팔더라도 15원 이상 가격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주유소도 마찬가지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06년 전국 주유소의 영업이익률은 1.4%에 불과하다. ℓ당 1,900원짜리 휘발유나 경유를 팔 경우 실제 마진이 25원 안팎이라는 뜻이다.
결국 정유사와 주유소 모두 마진 없이 팔더라도 ℓ당 40원 이상 인하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물론 지역별로 기름값 차이가 있겠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100~200원 이상의 인하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주유소 업계가 폴사인제 폐지를 환영하면서도 가격 인하 효과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기도 하다.
폴사인제 폐지로 여러 정유사들의 석유제품을 섞어서 팔 경우 정유사들이 소비자들을 위해 내놓은 카드 할인서비스(ℓ리터당 40~120원)를 없앨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소비자들이 오히려 현재보다 비싸게 기름을 구입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여러 정유사 제품을 섞어서 판매했다가 사고가 났을 경우 책임소재 파악이 힘든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폴사인제 하에서는 특정 정유사가 제품 품질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만, 폴사인제가 사라질 경우 누구한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유사와 주유소간 배타적 거래를 폐지하는데 대해서는 주유소업계가 적극 환영하고 있다. 정유사와 주유소간 계약은 ‘노예계약’으로 불릴 만큼 문제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계약기간(10년)동안 제품 소요량 전량을 00회사로부터 구매한다’‘00회사에서 공급 받은 제품으로 인해 영업용 재산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제조물 책임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하는 식이다. 주유소업계는 “배타적 계약관계를 철폐할 경우 과점 체제로 굳어져 있는 정유사간 경쟁이 촉발되면서 소비자에게 가격인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간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유업계가 주유소 시설물 지원을 중단하고, 주유소업계가 판촉 행사 등을 줄여 추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 폴사인제 - 주유소가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내걸고 해당 정유사의 석유제품만 판매하는 제도. 주유소에서 파는 제품 품질을 해당 정유사가 책임진다는 취지로 1992년 4월 도입됐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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