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떡을 볶은 요리다. 장금이가 만든 떡볶이가 드라마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떡볶이의 역사 또한 짧지가 않다. 물론, 장금이의 떡볶이는 간장이랑 쇠고기를 넣어 만든 '궁중 떡볶이'였지만 말이다.
요즘 우리가 자주 먹는 떡볶이는 '떡 찜'모양의 요리에 가까웠던 궁중 떡볶이보다 빨갛고 젊다.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학교 앞 분식집에서, 엠티 가서, 축제 때, 직장인들의 야식으로, 아님 야근 후 집으로 가는 길 늦은 저녁으로 떡볶이는 인기다.
이렇게 궁중의 떡볶이가 대중화된 이유에는 아마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역할이 컸으리라. 1970년대 들어 DJ박스를 만들고, 그 새로운 분위기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던 떡볶이집들을 통해 떡볶이는 신나고 맛나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났으리라. 어른보다는 애들이 좋아하는 메뉴. 어른 중에서도 철없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메뉴, 문득, 떡볶이가 먹고 싶다.
■ 신당동 '삼대 할먼네'의 추억
상호에 '할먼네'가 들어가 있어 정겨운 곳 '삼대 할먼네' 떡볶이집. 1972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37년째 떡볶이를 만들고 있는 곳이다. 지금 대표를 맡고 계신 사장님 내외분이 삼대째란다. 사모님의 외할머니께서 처음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하셨다고. 삼대째 이어진 장맛, 특히 춘장이 섞인 특유의 양념이 입맛을 끈다.
1,000원을 더 내고 콩나물을 추가하면 떡볶이 끓는 동안 콩나물이 한데 익으면서 질척한 국물 맛이 시원해진다(콩나물 양이 워낙 많아 해장으로도 좋다).
사실 할먼네 떡볶이는 나에게 좀 특별한 메뉴다. 결혼 전, 지금의 남편과 거의 첫 식사를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두 사람이 각자의 일로 야근을 해야 했고, 늦은 시간 저녁을 함께 먹기로 약속을 잡고 만났다.
그런데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배가 불러도 떡볶이는 몇 가래라도 더 먹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나, 그가 얘기했다. 그러면서 나를 데려간 곳이 바로 신당동 떡볶이 골목.
맞다. 나는 어릴 적부터 떡볶이를 제일 좋아했다. 특히 한겨울 스케이트장에서 언 볼을 호호 불며 서로 먹여주던, 남동생과 나눠먹는 떡볶이가 맛있었다. 길에서 파는 음식을 함부로 사 먹지 못하게 했던 엄마의 눈을 피해, 동생과 한 편이 되어 입에 넣는 따끈하고 매운 그 맛! 초딩 시절부터 남동생과 몰래몰래 맛을 들인 떡볶이는 그래서 가까운 사람과 먹어야 더 맛있다.
입가에 묻기도 하고, 매워서 얼굴이 벌게지기도 하니 말이다. 자장면과 더불어 데이트용 식사로는 젬병인 메뉴. '아직 친한 사이도 아닌데 하필 왜 떡볶이?' 속으로 꺼려하며 도착한 신당동 골목이었다. 한밤중이었는데도 골목 안은 떡볶이 끓는 냄새로, 북적대는 사람 냄새로 명랑했다.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들떠서 들어간 곳이 '삼대 할먼네'. 떡볶이 2인분에 소주 한 병이요! 자, 야근을 마치고 신당동 모퉁이에 자리를 잡은 남녀가 떡볶이 국물을 자글자글 끓여가며 소주잔 기울였을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그날 할먼네 떡볶이집의 호젓한 2층 자리는 운치가 있었다.
■ 먹자골목들, 오래오래 버텨 주기를
신당동 떡볶이 골목과 같은 특화된 먹자골목들이 서울에는 아직 몇 곳 더 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 명동 계란말이 골목, 왕십리 곱창 거리, 낙원동 떡집 골목, 동대문 종합시장 옆 생선구이 골목.
아, 그리고 피맛길. 너무 넓고 너무 신식인 곳에 가기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 서울 곳곳의 골목은 오랜 아지트였다. 뭐, 오래라고 해봤자 스물몇살 때부터 여태까지 고작 10년이 좀 넘는 세월이었지만.
이른 아침 시장 나온 날이면 조식 백반을 먹으러 들르던 동대문 밥집, 여름날 가게 밖에 깔아둔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계란말이집, 낙원동의 떡집 골목을 지나면 나오는 고깃집 골목. 담벼락에 기대 앉아 갈매기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어느 봄날.
속상한 일이 있던 날 대낮에 들른 피맛골에서의 빈대떡과 막걸리. 피맛골을 따라 술김에 걷다가 2차로 들어선 실비집의 임연수어 구이. 가난하게도 생긴 생선 한 마리에 일행은 막걸리를 거푸 들이켰었다. 그렇게 술집을 나와서는, 다들 자기 몫만큼 무거운 근심을 지고 골목을 돌아 흩어졌었다.
그 옛날, 지체 높으신 분들이 머리 위로 지날 때마다 서민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예를 표했어야 했다는데. 그래서 양반들과 마주칠 일 없는 좁은 길을 내게 되었고, 갈 길이 바쁜 이들은 종종걸음으로 피맛골 좁은 길을 쉼없이 걸어갈 수 있었다 하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다니다보니 그 골목에는 맛있고 저렴한 밥집, 쌓인 속을 풀어주는 술집이 자연히 생긴 것이다.
골목을 길게 따라 걷는 맛, 걷다가 먹는 맛이 있던 그 피맛골이 언제부터 점점 짧아지더니, 이제는 정말 짤뚝한 모양만 남아 볼품도 걷는 맛도 많이 줄었다.
긴 세월 속에 특화된 골목들은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다. 그 자리에 떡집이 발달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생선구이집이 즐비해진 사연이 있고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1972년 같기도, 1945년 같기도 하여 내가 사는 나라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님을, 뿌듯한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거다. 맛있는 것들로 가득한 골목들이 오래오래 버텨주기를 소망한다.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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