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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중계의 양념 '구라들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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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중계의 양념 '구라들의 전성시대'

입력
2008.06.1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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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프로야구가 '제2의 르네상스'를 맞으며 야구 해설가들의 주가도 치솟고 있다.

특히 메이저리그 전문 케이블 방송 엑스포츠가 올해부터 프로야구 중계에 뛰어듦에 따라 팬들은 거의 매일 4경기를 모두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야구 중계를 하는 방송사들은 무한경쟁의 시대를 맞게 된 셈이고, 해설가들은 '중계 전쟁'의 선봉장 노릇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팬들은 응원 팀의 경기를 지켜보게 마련이지만 해설가들의 '포스'와 '입담'에 따라 시청률의 희비쌍곡선이 갈릴 수도 있다. 야구 해설가들의 뜨거운 '구라 열전'을 살펴본다.

■ 해설가 전성시대

현재 한국 프로야구 담당 해설위원은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을 통틀어 감독 출신 5명을 포함, 총 10명에 달한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난 82년부터 마이크를 잡은 허구연 MBC 해설위원을 비롯해 서정환 김성한(이상 MBC ESPN) 이용철(KBS) 이효봉 이병훈(이상 KBS N) 김용희 김상훈(이상 SBS 스포츠) 이종도 김건우(이상 엑스포츠) 구경백(OBS) 해설위원이다.

이 가운데 이용철 김상훈 이병훈 김건우 구경백 위원이 비교적 베테랑 축에 속하고, 서정환 김성한 김용희 이종도 위원은 이제 1~2년차로 경력이 많지는 않다. 여기에다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아마야구를 맡고 있는 해설위원들까지 합하면 20명 가까이 된다.

백인천(SBS 스포츠) 조성민(MBC ESPN) 위원은 요미우리 홈 경기와 원정경기를 번갈아가며 중계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이승엽(요미우리)의 부진으로 일본 야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떨어져 마이크를 잡는 기회가 많지는 않다. 메이저리그 전문 해설가로는 엑스포츠의 송재우 이종률 위원을 꼽을 수 있다.

■ 제1 덕목은 철저한 준비

야구 해설가로서 갖춰야 할 덕목은 많다. 경기 흐름을 꿰뚫어 보는 냉철한 판단력, 풍부한 야구 지식,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 야구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 잡을 수 있는 달변 등이 필수 조건으로 꼽힌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인만큼 정확한 표준어를 쓸 수 있는 언어구사 능력도 요구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철저한 준비성이다. 임기응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해설 31년째를 맞는 허구연 위원은 "시즌 중에는 거의 약속을 하지 않는다. 결혼식 등 중요한 행사에도 참석 못할 때도 많다"며 "보통 일주일 전에 스케줄을 통보 받으면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중계를 맡은 팀들의 경기를 모니터한다"고 밝혔다.

올시즌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서정환 위원은 "최근 5, 6경기의 투ㆍ타 성적을 포함해 투수 로테이션, 엔트리 변경, 팀 상황을 철저히 체크해서 노트를 만든다"며 "당일에는 경기 전 양팀 덕아웃에 들러 감독을 포함해 선수단의 분위기를 파악한다"고 소개했다.

■ 높아진 위상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해설가들이 야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위상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일부 감독들은 이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조언을 듣기도 한다. 당연히 대우도 개선됐다. 초창기만 해도 해설가들은 경기 당 얼마를 받았지만 지금은 연간 계약을 한다.

물론 허구연 위원 등 일부 베테랑을 제외하곤 많은 해설가들이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적절한 몸값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들의 주가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허구연 위원은 "해설을 하면서 감독 제의도 몇 번 받았지만 모두 뿌리쳤다"고 비화를 소개한 뒤 "해설도 엄연한 야구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게 하고 싶었다. 해설가로서 야구를 보급하고 잘못된 일본식 용어를 순화하는 데 일조한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한국 프로야구에 명예의 전당이 마련된다면 해설가들도 헌액될 날이 멀지 않았다.

■ 해설위원 실수담/ "열차사고 오랜만에 크게 났네" 설화 불러

라이브로 진행되는 야구 중계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것이 크고 작은 '방송 사고'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가장 큰 대형 사고를 친 이는 누구였을까. 장본인은 다름 아닌 한때 허구연 MBC 해설위원과 양대 산맥을 이뤘던 하일성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다. 하 총장은 KBS 해설위원 시절인 1993년 당시 중계 방송을 하다 속보를 전달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가 구포에서 전복돼 78명이 사망하고 163명이 중경상을 당한 최악의 참사를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참 오랜만에 사고가 크게 났네요"라고 했던 것.

이 방송 멘트가 나가자마자 방송사 전화통에는 불이 났다. 전국에서 항의가 쏟아졌다. 하 총장은 "당시 전화를 받으면 다짜고짜 육두문자가 쏟아졌다"며 "거의 잘리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시말서를 쓰는 걸로 마무리가 됐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고교 야구가 최고 인기를 끌던 80년대에는 한ㆍ일전을 중계하며 경기 중반까지 양팀 선수를 거꾸로 소개했다. 친선 경기에서 선수들이 유니폼을 서로 바꿔 입고 나온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던 탓이다. 다행히 한국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대형 방송사고는 승리에 묻힐 수 있었다.

모 해설위원은 '설화(舌禍)'가 아닌 '수화(手禍)'를 겪기도 했다. 지난 2006년 중계를 하던 중 카메라가 꺼진 줄 알고 친한 스태프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드는 장난을 쳤는데, 카메라가 작동되고 있어 안방으로 그대로 전파된 것이다. 그는 결국 징계를 받고 몇 개월간 근신한 후에야 다시 컴백할 수 있었다.

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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