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조경란 다섯 번째 소설집 '풍선을 샀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조경란 다섯 번째 소설집 '풍선을 샀어'

입력
2008.06.17 00:22
0 0

조경란(39)씨가 다섯 번째 소설집 <풍선을 샀어>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냈다. 2004년 가을부터 올 봄까지 쓴 단편 8편을 묶은, 등단 13년째를 맞은 작가의 진지한 사유와 옹골진 문장을 만날 수 있는 단편집이다.

조씨가 지난해 발표한 장편 <혀> 는 세계적 출판그룹 블룸스베리를 통해 내년 미국 출간되고 네덜란드ㆍ이스라엘에도 판권이 팔리는 등 국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네 번째 소설집 <국자 이야기> (2004)가 그렇듯, 이번 수록작도 모두 1인칭 소설이다. 1년 내내 작품 한 편 못 쓴 시인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치료를 받는 과정이 주축을 이루는 ‘마흔에 대한 추측’을 비롯, 정신적 상처를 입은 ‘나’가 그 치유를 모색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들이 많다. 그 상처 중 여럿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죽음에서 비롯하고 있다.

가장 일찍 쓰여진 축에 속하는 ‘달팽이에게’와 ‘달걀’은 인물 구성에서 닮았다. 두 작품엔 일찍 부모를 잃은 남성 화자, 그를 길러준 은인이자 치매 환자인 고모(이모), 애인이 등장한다. 그 중 ‘달팽이에게’의 주인공은 ‘하지’ ‘요지’란 이름의 두 고모와 함께 산다.

어릴 적 열병으로 인한 뇌손상을 평생 안고 살아온 요지 고모는, 순탄한 삶을 살다가 말년에 치매 걸린 하지 언니를 정성껏 돌보다 임종하고 자신도 한 달 뒤 세상을 뜬다. 모두 평화롭고 따뜻한 죽음이다.

세 식구가 기르던 두 달팽이는 두 노인이 죽는 동안 교미하고 알을 낳는다. “정말 저 고모들이 나를 낳은 건 아닐까. 자웅동체인 달팽이들처럼 말이다.”(70쪽)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익사체를 목격한 이후 사로잡혔던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다.

감각적 묘사로 초장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표제작은 가족에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니체 전공 철학박사 ‘나’와, 연하의 전직 핸드볼 선수 J와의 연애담을 경쾌하게 풀어간다. 유학 시절 공황장애로 상담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나’는 백화점 교양강좌 학생으로 만나 교제하던 J가 심각한 폐소공포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공포의 연원을 찾아 극복해 가면서 ‘치유로서의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곳곳에서 니체의 유려한 아포리즘과 만나는 재미도 크다. 조씨는 작가의 말에서 니체를 고흐와 더불어 “(작품집을) 쓰는 동안 많은 영감을 주고 동시에 나를 깨어 있게 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한 수록작 제목에도 포함된 단어 ‘환(幻)’은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코드다. 이국(독일)을 배경 삼은 두 단편 ‘형란의 첫 번째 책’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에서 환상성은 가장 두드러진다. ‘버지니아…’에서 어린 시절 부모와 사별한 ‘나’를 돌봐온 할머니는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감추려 손녀를 떼밀듯 외국으로 보낸다.

‘나’는 그곳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만난 적이 있어”라는 자기 말에 진지하게 대꾸해주는, 할머니에 이은 두 번째 사람 ‘소냐’를 만난다. 소냐와 교유하며 주인공은 다시금 ‘버지니아’를 만난다. “그녀는 무엇을 하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전에는 아무 일도 진짜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144쪽)

‘형란의…’에서 실종된 소설가 남편을 찾아 불완전한 지도를 들고 이국을 헤매던 주인공은 지인에게 남편에게 전할 메시지를 남겨둔다. “맨 처음 글을 쓰기로 했을 때, 그것은 삶을 위해서였다는 걸 부디 잊지 말라고 말입니다.”(120쪽). 글 쓰는 자로서의 자의식을 단단히 매조지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두 작품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