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東京) 아키하바라(秋葉原) 무차별 살인 사건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무고한 행인을 칠 목적으로 2톤 트럭을 빌려 범행 도구로 쓰는, 상상을 뛰어넘는 준비와 그것도 모자라 단검을 5자루나 구입해 차에 치여 쓰러진 사람을 타고 앉아 찌르는 범행 수법이 흉악하기 짝이 없다. 순식간에 사람을 덮쳐 해를 주고 지나간다는 이번 ‘도리마(通り魔)’ 사건은 일본 국내에선 최근 30년 동안 가장 흉악했다고 한다.
비정규직 고립감에 무차별 살인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 가토 도모히로(加藤智大)는 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우선 ‘비정규직’ 문제를 중요한 범행 배경의 하나로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범인은 일본 북부 아오모리(靑森)에서 공부도 잘 하고 운동에도 능한 우등생으로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그 실력으로 지역의 유수한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고교 졸업 후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 기술을 배울 전문학교를 선택하면서 인생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졸업 후 공사현장 교통정리를 맡는 파견사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딘 그는 그 뒤로 1, 2년마다 일자리를 바꾸면서 신분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범행 직전까지 다니던 자동차 부품공장에서도 구조조정의 불안에 시달렸다. 그러는 동안 그의 마음 속에서는 ‘성공하는 놈들은 다 죽어 버려’라는 증오심이 커져 갔다.
공부를 강요한 부모에 대한 불만도 그의 마음을 비뚤어지게 한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일기 대신 썼다는 휴대폰 게시판 글에서 그는 ‘부모가 자식을 자랑하고 싶어 (자신을)완벽하게 만들어 낸 것’이라고 불평하고 ‘부모가 있는 고향이 싫어’ 일부러 다른 지역으로 일자리를 구해 전전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외톨이라는 글을 반복해 썼다. 부모와는 오래 전부터 연락을 끊었고 친구도 애인도 없다. 현실에서는 없는 친구를 찾아 인터넷이나 휴대폰 게시판을 들락거렸지만 거기서도 여전히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매일 싣는 ‘독자의 소리’ 투고 중 잘 된 글을 골라 한 달에 한 번씩 다시 소개한다. 지난달 독자 투고 베스트에 뽑힌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시 주부 다카하시(高橋) 사치씨의 글을 읽으며 이 사건의 해법은 ‘가족’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헤아려 주는 단 한 사람
‘어머니는 차로 6시간 쯤 걸리는 남동생 부부네 집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매일 뜨개질을 하고 눈도 귀도 밝고 건강합니다. 최근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모습에 기뻤습니다. 돌아갈 때 어머니에게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드렸고 저는 어머니가 뜬 양말 2켤레를 받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양말이 든 상자를 열었더니 봉투가 들어 있었습니다. 안에는 ‘용돈으로 쓰거라’고 쓴 편지와 1만엔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이 많이 들어서도 어머니가 저를 걱정하는 데 깜짝 놀랐고 어머니의 자상함, 고마움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글을 신문에 투고한 사치씨는 올해 83세이고 용돈을 준 어머니는 올해 1월에 100세 생일을 맞았다고 한다. 아키하바라 사건의 범인이 자신 말고도 숱하게 있다고 말한 ‘범죄자 예비군’이 붕괴된 가족이라는 텃밭에서 자라나는 건 아닐까.
김범수 도쿄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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