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의 파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전에 없이 따뜻하다. 화물연대 홈페이지나 각종 사이버공간의 토론광장에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딱한 사정에 연민을 표하고, 파업의 취지에 공감하는 의견이 늘었다. 대규모 파업이라면 우선 눈길이 차가워지던 과거에 비해 작지 않은 분위기 변화다.
그런데 이런 변화한 분위기조차 당장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물류를 멈추어 세상을 바꾸자’는 과장된 구호와 함께 내건 요구를 충족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파업의 직접적 계기인 경유가 급등의 충격을 유류세나 지원금 조정을 통해 완화하라는 유류가 인하 요구는 그나마 단순한 편이다.
신고제인 화물운송료를 인가제로 전환하고, 최저운송료 기준을 정해달라는 ‘표준요율제’도입은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을 정부 규제로 뒤트는 셈이 된다. 또 운송료 인상은 화주와 교섭해야 할 문제이지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데다 운송료 인상이 우리 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떠오른 물가상승을 자극하리란 우려가 크다.
규제완화 따른 공급과잉
그러나 이런 우려는 어디까지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때의 얘기다. 시장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하려면 참여자들의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행위가 전제돼야 하지만, 그런 투명한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현재 화물연대의 어려운 처지가 물류체계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한 것이고, 정부가 그에 일조했다면 마땅히 책임을 통감하고, 최대한의 해결 노력을 기울일 일이다.
물류시장은 만성적 공급초과에 시달려왔다. 화물연대가 파업으로 외친 절박한 요구를 수용, 정부가 2004년 화물차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어 진입 장벽을 쌓았지만 때가 늦었다. ‘IMF 위기’ 당시 화물운송업 규제완화 조치와 대량실업이 맞물리면서 폭증한 신규진입의 여파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정비하지 않은 채 일방적 규제완화로 달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표준요율제’가 시장질서를 뒤튼다는 시각도 일면적이다. 운송업체에는 최저가격제지만, 화물연대 조합원의 근간인 지입차주에게는 최저임금제라는 점에서 정부 개입은 적어도 절반의 정당성을 갖는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가 여러 차례 조속한 도입을 약속한 바 있어 새삼스럽게 도입 여부 자체를 시비할 게 없다.
대형 운송업체에 비해 개인사업자인 지입차주들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하는 다단계의 알선ㆍ중개 수수료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기 위한 제도 정비도 정부가 나서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시장의 실패와 이를 간과한 정부의 실패가 뒤엉킨 문제를 시장에 맡겨두는 것은 나태하고 무책임하다.
따라서 당면과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화물연대와 대화하고, 화주들과 화물연대의 교섭을 중재해 조기에 적정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병이 깊은 환자는 환부를 도리는 수술이 필요하다. 만성적 공급 과잉의 인위적 해소가 물류체제의 수술에 해당한다.
웬만하면 1억원이 넘는 화물차 ‘무게’에 짓눌려 적자운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입차주들에게 퇴로를 열어줄 방법은 없을까. 직장의 ‘명예퇴직’이나 농업의 ‘휴경보상’ 같은 장치가 없을 리 없다. 물류 안정이 농업 기반 유지와 마찬가지로 국민 삶의 기본적 조건이라고 인식한다면, 국가적 지원의 필요성은 커진다.
근본적 수술법을 찾아야
한편으로 화물운송 비용에서 고속도로 통행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전국 곳곳에서 이어진 도로 건설로 ‘노는 길’은 많이 생겼지만 광역 화물전용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말 많은 대운하 대신 이 기회에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건설ㆍ유지비를 부담하는 화물전용 간선도로망 건설 등 장기적 비용절감 대책에도 눈길을 돌릴 때가 됐다.
화물연대에 소속된 화물차 비율이 높지 않아 ‘물류대란’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화물연대의 다짐은 ‘헛방’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모처럼 싹튼 연민의 힘으로 정책을 바꾸고, 이로써 세상을 바람직하게 다듬어 나가는 것은 결코 꿈이 아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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