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광장의 촛불이 어느 날 갑자기 밝혀진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이든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두 달 전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나서며 그것을 실용외교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시절 다소 소원한 관계였던 미국과의 거리를 좁히고, 우방국으로서의 신뢰 구축을 재확인하는 것이 새 대통령의 실용외교인 셈이었다.
그런 대통령의 미국방문 일정 속에 4월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다.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방문 하루 전,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타결이었다. 그 협상에 대해 부시 미국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감사함을 표시했고, 별장에서 양국 대통령이 함께 탄 자동차의 운전까지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맡기며 친선과 우의를 강조했다.
국민은 그 모습을 보며 저것이 바로 새 대통령의 실용외교구나 여겼다. 그런데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쇠고기 수입 협상 결과가 알려졌을 때, 국민들은 결코 실용이 아닌, 국민의 건강과 안전, 상황에 따라서는 생명까지도 보장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는 협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캠프 데이비드 방문 대가 치고는, 또 그곳에서 양국 정상이 함께 탄 자동차의 운전대를 넘겨받은 값치고는 국민의 건강 안전까지 뒷전이 되어버린 너무도 큰 것을, 위험하게 넘겨준 셈이었다.
처음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어른들보다 이제 막 자라나는 과정에 있는 중ㆍ고등학생들이었다.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자신의 치적처럼 내세우는 청계천에서 처음 촛불을 들었다. 자, 정직하게 돌아보라. 이때 우리는 어떠하였는가? 찌라시 수준의 메이저 언론들은 연일 ‘괴담’ 타령을 하며 이게 이 나라의 언론인지 아니면 미국 축산업자들의 기관지인지 모를 행태를 보이고, 정부는 어린 소년소녀들의 촛불시위에 대해서조차 좌파 배후를 운운하며 이를 무시묵살하며 우리 국민의 돈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에 대해 광고했다.
사람들은 점점 광장에 모여들었고, 그러는 사이 촛불을 지키는 사람들도 어린 소년소녀에서 점차 어른으로, 또 전 가족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찌라시 수준의 언론과 정부여당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자신들이 했던 말들을 뒤집으며 미국산 노령 쇠고기의 안전성만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러는 동안 자신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 하고 떠넘기고 싶어 했던 촛불시위의 배후가 바로 자신들이라는 걸 정녕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그렇게 어거지로 누구에겐가 떠넘기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도 그들은 ‘배후’를 운운하며 이제는 그만 촛불을 꺼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자. 21년 전 6ㆍ10 민중항쟁 때도 그들은 민주화투쟁을 위해 거리에 나섰던 사람들은 불순세력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이고, 그와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절대로 광장으로 모여들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입버릇처럼 이제는 모든 것을 그만 멈출 때라고 말하던 사람들이다. 정말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모든 일들이 그들의 말대로 멈추어졌다면 우리는 지금 민주화의 근처에나 와 있을까?
지금 역시 그렇다. 저들은 촛불시위 역시 시작부터 멈추라고 했다. 그 말대로 멈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위험천만한 미국산 쇠고기가 이미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오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연일 촛불을 들고 모여도 ‘재협상을 하겠다’는 말 대신 ‘추가 협상’이니 ‘재협상에 준하는 안전성’이니 하며 국민들에게는 온갖 말장난을 하고, 뒤로는 또 굴욕적인 방식으로 미국정부도 아닌 미국 쇠고기 수출업자에게 온갖 구걸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광장의 국민이 결코 촛불을 놓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임을 왜 모르는가.
대통령과 정부가 저 광장의 촛불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옳지 않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옳다면 대체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한 나라 수도의 중앙로에 국민과 정부 사이에 성벽이나 쌓는 부끄러운 짓 제발 그만하고, 지금이라도 국민의 뜻을 받아들인다면 저 촛불이 무엇 두려울 게 있겠는가.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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