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가 지난 주 개최된 국수전 예선에 출전치 않았다. 지난 해 건강이 좋지 않아 극심한 컨디션 난조를 겪었던 그다. 올해는 그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미리 대국수 조절에 나선 것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거나 예선부터 참가해야 하는 기전은 가급적 피하고, 대신 비중이 큰 국내외 메이저 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국수 타이틀을 9차례나 보유했던 이창호가 국내에서 가장 유서 깊은 기전인 국수전에 출전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바둑사이트에는 혹시나 다른 이유가 있나 궁금해 하는 바둑팬들의 댓글이 쇄도했다.
이에 대해 이창호는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다. 올해 뜻밖에 성적이 좋아서 대국수가 너무 늘어나는 바람에 체력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예선에 나가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국내 기전 예선전은 보통 이틀에 한 판씩 근 열흘 간에 걸쳐 대국이 계속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무척 크다.
더욱이 '세계 정상급'인 신예 강자들이 우글우글하기 때문에 국내 기전 예선 통과하기가 세계 타이틀전 이기기보다 더 어렵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매우 힘이 든다. 실제로 지난해 이창호는 GS칼텍스배 예선에서 무명 홍기표(당시 초단)에 패해 탈락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올해 국수전 예선과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와 후지쯔배 대회가 서로 일정이 겹쳤다. 물론 국내 기전과 세계 기전 일정이 겹칠 경우 한국기원에서 국내 대국을 연기해 주지만 그래 봤자 날자만 며칠 뒤로 미뤄질 뿐 대국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므로 아예 출전을 포기한 것이다.
사실 이창호가 국내 기전에 출전치 않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에도 천원전 기성전 맥심커피배 등 몇몇 기전에 계속 불참했고 지난 3월 개막한 제4기 한국물가정보배 때도 예선에 출전치 않겠다는 뜻을 비쳤었다. 그러자 주최측이 재빨리 선수를 쳐서 특별추천케이스로 이창호에게 본선 시드를 부여, 예선 대국을 면제해 줘서 유야무야 넘어 갔다.
이창호는 지난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적정 대국수에 대해 "한 달에 5~6판 정도, 1년에 70국이면 적당할 것 같다"며 "내년부터는 일부 기전에 출전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대국수를 줄여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올 들어 12일 현재 35국을 두어서 상반기 중 목표량을 이미 달성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창호는 젊은 시절 한 해 대국수가 100국을 넘기도 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줄곧 70국 이하였다가 2005년에 75국, 2006년 84국, 2007년 85국으로 다시 늘어났다. 이창호는 "어느 기전에 출전한다, 안 한다 미리 정해 놓지는 않았다. 앞으로 몸 상태와 대국 성적을 봐가면서 적
절히 조절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반기 중에 열릴 예정인 왕위전이나 GS칼텍스배 예선에 또 불참할 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돌부처 '완벽 부활'
올 다승·승률 1위… 5대 메이저 본선도 다 올라
한편 이창호는 지난해의 부진을 씻고 올해 완전히 다시 살아났다. 연초부터 18연승을 거둔 데 힘입어 원익배와 전자랜드배 백호왕전에서 우승했고 29승6패로 다승 및 승률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또한 국제 기전에서 연승을 거듭하며 후지쯔배와 응씨배서 4강, LG배와 춘란배서 각각 8강에 올랐다.
다음달부터 시작될 삼성화재배까지 포함, 올해 열린 5대 메이저 세계 대회 본선에서 모두 살아남은 한국 기사는 오직 이창호 뿐이다. 특히 후지쯔배와 춘란배서는 홀로 한국 바둑을 대표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올해 열리는 5대 메이저 세계 대회 가운데 두어 개는 반드시 우승하겠다." 이창호의 굳은 각오다. 이창호는 지난 2005년 제5회 춘란배 우승 이후 주요 국제 기전에서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국내 기전 출전을 과감히 포기하면서까지 국제 기전에 주력하는 이창호의 배수진이 과연 성공을 거둘 지 기대를 모은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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