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은 크건 작건 간에 반드시 재능으로 천거하여야 하며, 벼슬은 높건 낮건 간에 반드시 능력으로 선발하여야 합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하는 것을 ‘공(公)’이라 하였으며, 이와 반대로 하는 것을 ‘사(私)’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는 공을 따르고 사를 버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선발의 책임을 맡은 관리는 재산이 많고 적음을 따져 임용하고, 벼슬하는 사람은 재산이 있고 없음을 가지고 출세하려 합니다.”
400년 전 광해군 때와 비슷
“게다가 임명장이 내려오기도 전에 미리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 누가 될지 어림짐작합니다. ‘아무개는 중전의 친척이고, 아무개는 후궁의 겨레붙이이다. 지금 아무개 관직에 자리가 비어 있으니 반드시 아무개가 될 것이고 아무개 고을에 수령자리가 비어 있으니 반드시 아무개가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임명장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 거의 그대로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이조와 병조에서 인사담당을 맡은 부서도 그것을 제재하지 못하고, 대간(臺諫)에서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합니다.”
이 글은 광해군 3년(1611년)에 실시된 별시문과에서, 선비 임숙영이 과제(科題)에 대하여 답으로 작성한 책문(策文)의 내용 중 일부이다. 무려 400년의 세월을 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위 책문에서 지적한 국정 혼란상은 이 정부의 국정 난맥상과 너무나 닮아 신기하기까지 하다. 물론, 혼란의 주체가 ‘중전’ ‘후궁’에서 ‘비서진’‘측근’등으로 바뀌었으나 이마저도 그 본질은 왕이나 대통령의 총애를 믿고 권력을 사유화한 한 줌의 무리라는 점에서 여전히 같다.
많은 기대를 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100여일 만에 내각의 일괄 사의 표명이라고 하는 참담한 지경을 맞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임숙영은 위 책문에서 당시의 국정혼란은 측근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방치했던 임금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이 정부에 대해서도 같은 지적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 대통령은 내심 ‘취임 후 밤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일했는데, 내가 이 모든 혼란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은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항변에 대한 대답은 광해군이 잘 들려주고 있다.
광해군은 위 별시문과의 과제로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시하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요령은 당시의 시급한 일을 잘 파악하는 데 있다. 만약 상황에 맞는 조치를 적절하게 취하지 못하면, 비록 날 새기 전에 일어나 옷을 차려 입고 밤 늦게 저녁을 먹으며 부지런히 힘쓴다 해도, 끝내 위태로움과 패망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정부 출범 후 ‘월화수목금금금’‘얼리-버드(early-bird)’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외양을 취해 온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 가장 시급한 나라의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도 없이, 몇몇 측근들의 전횡을 방치한 채, 그저 열심히만 한 국가의 일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경륜ㆍ능력 갖춘 인재 발탁을
당송 팔대가 중의 한 사람인 소철은 ‘정치에는 옛 것과 새 것이 따로 없다. 오로지 민을 편안하게 하는 데 그 근본이 있다. 政無舊新 以便民爲本(정무구신 이편민위본)’이라고 하였다. 소철의 지적대로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지금 가장 시급한 나라의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일을 행하는 첫 단추는 대통령이 인식을 전환하는 것, 그리고 몸을 낮추어 경륜과 능력을 가진 인재를 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곪고 곪아서 더 이상 치유의 가망이 없을 때 병이 발견된 것보다는, 치유가 가능한 이 시점에서 병이 발견된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 부디 이 정부의 다음 내각은 국민을 편안케 해 줄 수 있는 사람, 돈이나 권력의 악취보다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변환철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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