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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오빠와 손 잡고 풀 먹이던 어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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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오빠와 손 잡고 풀 먹이던 어미소

입력
2008.06.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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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고기 수입문제 때문에 한우 값이 떨어져서 한우 키우는 집마다 걱정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어릴 적 소가 재산이었던 그때가 생각이 나네요.

저희 집은 농사를 지었는데 소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가축이었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밭이나 논을 갈고, 가을에는 농사지은 것을 팔 수 있도록 마차에 실어 나르고…. 또 남의 집 밭이나 논을 갈아주어 돈을 벌고, 새끼를 낳으면 그것도 팔아서 아이들 공부를 시켰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집에 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보물 1호였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소를 샀기 때문에 소가 많은 집이 부자였습니다.

저희 집에도 어느날 부모님이 암소를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소는 풀을 아주 많이 먹어야 하는데 부모님은 농사일을 하시느라고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빴기 때문에 오빠와 저에게 소를 기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특히 소가 먹는 풀만큼은 오빠와 저에게 각기 책임을 맡겼습니다.

그래서 오빠와 저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소를 끌고 산과 들로 나갔습니다. 소가 풀을 뜯어먹게만 하는 게 아니라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먹을 풀까지 베어와야 했습니다. 오빠가 풀을 베는 동안 저는 소 고삐를 잡고 풀을 뜯어먹는 대로 따라 다녔습니다. 덩달아 칡넝쿨도 따서 먹고, 꽃도 따서 먹고, 또 심심하면 쇠똥구리도 잡으면서 놀았습니다. 이렇게 해가 질 때까지 소에게 풀을 뜯기고 나서 오빠는 지게에 풀을 메고 저는 소 고삐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빠와 제가 소를 마치 동생처럼 항상 같이 데리고 다니다시피 하면서 열심히 돌봐줬는데 소가 새끼를 뱄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소가 한 마리 더 생긴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빨리 새끼를 낳기 만을 기다렸습니다 지금은 소가 새끼를 배면 딱 예정일을 계산해 낼 수 있지만 그때는 언제 새끼를 낳을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하루빨리 새끼가 나오기 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소의 배가 불러오자 엄마는 “이제 새끼 낳을 때가 된 것 같다”면서 소에게 힘든 일도 시키지 않고 먹는 것도 한층 신경을 써주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출신시기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하루종일 소만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날도 아버지는 멀리 일을 나가셨고 엄마는 농사지은 걸 팔기 위해 시장에 나가셨는데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소에게 풀을 주려고 보니 바닥에 누워 있더군요. 자세히 보니 소가 드디어 새끼를 낳으려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빠와 저는 항상 소하고 같이 지냈지만 막상 새끼 낳는 것은 처음 보기 때문에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동네에 아는 분을 모셔왔습니다. 결국 그분 덕분에 소는 새끼를 무사히 낳았습니다.

어미 소는 힘들게 새끼를 낳고서는 무언가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풀을 주었지만 먹지를 않더군요. 동네 분이 물을 좀 가져오라고 했고 저희는 그냥 지하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소는 목이 말랐던 듯 허겁지겁 물을 마셨습니다. 몇 번을 더 소에게 물을 갔다 주었을 정도로 아주 많이 마시더군요. 그렇게 저녁때가 되어서 부모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소가 무사히 새끼를 낳은걸 보시고는 저희를 너무나 대견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엄마가 급하게 여물을 끓여서 어미 소에게 주었는데 한 입도 안 먹고 그냥 누워 만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의아해 하셨습니다. 소는 숨 쉬는 것도 점점 힘들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도 물론 수의사들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집은 아주 깊은 산골이었기 때문에 웬만해선 수의사를 만나러 가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아버지는 아주 늦은 밤인데도 자전거를 타고 수의사를 모시러 갔습니다. 그 동안 엄마와 저희들은 소를 보며 그저 울기만 할뿐 아무것도 해 줄게 없었습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아버지가 먼저 돌아오셨지만 그때 이미 소는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부모님과 저희들은 너무나 서럽게 울었습니다. 재산이 없어졌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정말로 가족을 하나 잃은 것 같은 슬픔이었습니다. 당시는 소를 함부로 잡을 수도 없던 시절이라 경찰에 곧바로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밤 늦게 경찰관과 함께 도착한 수의사는 진찰을 하더니 “새끼를 낳은 뒤에는 몸에서 나쁜 피가 빠져 나와야 하는데 소가 찬물을 많이 먹는 바람에 피가 몸 안에서 응고가 돼서 죽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나 슬프게 어미 소를 보냈지만 그래도 송아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고는 정성을 다해 남은 송아지를 키웠습니다. 당장 다음날 아침 아기들이 먹는 분유와 우유병을 사왔습니다. 끓는 물에 우유를 타서 적당히 식혀 송아지를 먹였습니다. 정말로 아기를 기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송아지는 배가 고프면 엄마를 찾곤 했습니다. 엄마가 부엌에 있으면 부엌으로 들어와서 엄마를 입으로 툭툭 치고, 엄마가 밭에 있으면 어떻게 아는지 꼭 엄마를 찾아 갔습니다. 엄마가 항상 우유를 먹이다 보니까 엄마를 자기 엄마로 아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으니까요. 어미 잃은 송아지가 불쌍해서 엄마는 송아지를 가두지 않고 그냥 밖에다 놓아 키웠습니다.

그런데도 송아지는 항상 엄마 주변에서 놀았고 엄마가 어디라도 가려 하면 하도 따라 가려고 해서 그때마다 오빠와 저는 송아지를 붙잡느라고 엄청 애를 먹었습니다. 엄마가 밖에 가셔서 집에 안 계신 날은 오빠나 제가 대신 우유를 먹였는데 송아지는 그럴 때면 장난도 안치고 시무룩해 있다가도 엄마만 돌아오시면 너무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족은 송아지를 키우느라고 어미 소를 잃은 슬픔을 잊었습니다. 송아지는 어엿하게 어른 소로 잘 자라났고 그 소가 또 새끼를 낳아 저희 집에도 서너 마리의 소가 더 생겼습니다. 부모님은 이렇게 소를 키워서 저희들 공부를 다 가르치셨습니다.

소고기 수입 때문에 소 값이 크게 내려서 소를 키우는 농가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한우 키우시는 분들 힘내세요.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 조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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