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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조기유학 광풍] <3> 국제학교 적응에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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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조기유학 광풍] <3> 국제학교 적응에 '올인'

입력
2008.06.12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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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안 되고, 필리핀 학생들이 따돌리는 것도 같고, 기후도 맞지 않았어요."

마닐라 국제학교인 브렌트(Brent) 5학년에 다니는 이모(12)군은 필리핀 생활 2년째에 접어든 '중견' 조기 유학생이다. 지금도 학교 생활에 완전하게 적응한 것은 아니지만, 입학 초기에는 적응이 힘들었다. 물론 영어 때문이었다. 이군은 "처음엔 정말 스트레스가 심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수십 번 했다"고 말했다.

■ 6개월은 고생

한국에서 사설 영어학원을 6개월 가량 다니면서 1대 1 영어회화를 하며 영어 '공포'를 어느 정도 줄였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20명이나 되는 교실에 내던져지자 저절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질문을 한번 못 알아들은 뒤부턴 자꾸 땅바닥만 쳐다보게 됐어요. 또 시킬 것 같아서요."

말문이 트이면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은 입학 후 6개월 정도 지나서다. 이군의 엄마는 "필리핀 학생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고 모임에서도 배제해 마음 고생이 심했다"며 "아들처럼 성격이 소심하고 적극적이지 못하면 적응이 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군 처럼 한국 학생 대부분은 유학 초기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낮선 환경에 대한 충격을 줄이고 좀더 효과적인 적응을 위해 학부모들은 충분한 '완충기간'을 갖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입학 전 현지 영어학원 수강은 '정규 코스'가 돼버린 지 오래다. 알라방 지역 C&C 영어학원 이성희 원장은 "필리핀 사립학교와 국제학교는 대개 6~8월에 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은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12월에 입국해 입학 전까지 4~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영어 훈련을 받는다"고 귀띔했다.

입학 후엔 학교 수업을 따라잡는 것이 1차적 관심사여서 방과 후 일정이 아주 빡빡하다. 학교에서 배운 과목을 복습하는 한국식 종합학원에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수학 등 과목별 개인 과외를 받는 일도 적지 않다. 집에서도 영어에 친숙해지기 위해 영어 일기를 쓰거나 영어책 보기, 영어 TV채널 시청 등이 주된 일과다.

■ 한국 학생끼리 어울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의사소통이나 교우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국제학교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한 반을 이루고 있지만 한국 학생들은 유독 한국 친구들끼리 교우관계가 돈독하다는 게 현지 교사들의 설명이다.

그룹별 과제도 한국 학생끼리 그룹을 만들어 과제를 제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말레이시아 국제학교 UIS 하산 학사담당 이사도 "한국 학생들은 어디를 가도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한국인 기질이 교사나 다른 국가 친구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는 뜻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이 같은 '그룹 문화'가 자녀들의 영어 실력 저해로 이어지지나 않을 지 전전긍긍한다. 의도적으로 영미계 학생들과 어울리도록 강요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산유학원 김세수 원장은 "리차드나 마이클이랑 친하다고 하면 칭찬 받지만, 영이랑 철수랑 어울린다고 하면 부모 얼굴색이 금새 변한다"고 말했다.

일부러 한국 학생이 없는 국제학교를 택하기도 하지만 적응은 여전히 쉽지 않다. 말레이시아 페낭 지역 국제학교에 4학년 딸을 입학시켰던 김모(40)씨는 6개월도 안돼 한국 학생이 북적대는 쿠알라룸푸르로 되돌아왔다.

그는 "영어를 제대로 배우겠다는 생각에 한국 학생이 적은 학교를 택했는데 딸이 현지 학생들과 서양 애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 스트레스가 심했다. 영어도 중요하지만 학교 생활 적응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동남아에서도 학부모 치맛바람

영어에 '한이 맺힌' 학부모들도 남다른 노력을 한다. 학교에서는 1년에 3, 4차례 정기적으로 학생과 상담을 하기 때문에 학부모들도 기본적인 영어실력은 갖춰야 한다.

특히 자녀 성적과 학교생활에 관심이 많은 한국 학부모들은 영어공부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담임교사가 마음에 안 들어 두 차례 반을 옮겼다는 마닐라의 한 한국 학부모는 "말이 안 통하면 교사에게 설득이나 요청, 항의도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한 달에 30만원 정도 내고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담배 피우다 걸린 자녀 때문에 호출된 보호자가 학교에서 제시한 서류에 덜컥 사인을 했다가 퇴학처분을 받은 일도 있다고 필리핀 교민들은 설명했다. 까막눈이라 해당 서류가 퇴학처분 동의서라는 사실을 몰랐던 탓이다.

필리핀 내 영어학원 관계자들은 "한국 학부모들은 현지에서 영어 못하기로 소문 나 있지만 자녀가 관련된 일에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전했다. 영어를 잘 하는 가디언(현지 보호자)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학교에 의사 표시를 하거나 학부모끼리 연대해 집단 행동을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학부모는 자녀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금품을 제공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마닐라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교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한국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은 현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에 들어갔다 돌아올 때면 명품 화장품이나 고가 선물을 챙겨와 교사에게 주거나, 아예 현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한국식 촌지 관습이 동남아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 "한국 돌아갈텐데 뭘" 성적 연연 안해

"성적이요? 1~2년 지나니까 어느 정도 따라갔는데, 그래도 현지인만 하겠어요."

말레이시아 미국계 국제학교 ISKL(International School of Kuala Lumpur)에 6학년 아들이 재학 중인 학부모 김모(40)씨는 성적 이야기를 꺼내자 "반에서 중간 정도 한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처음엔 밑바닥이었다"며 "영어 준비가 제대로 안됐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을 하고 있고, 1년 지나면 중간 정도 수준은 되며, 그 다음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한국에 비해 수업 강도가 세지 않아 일정 수준까진 성적이 오르지만, 한국과 커리큘럼이 다른데다 수업이 영어로 진행돼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다.

말레이시아 국제학교 UIS(Utama International School) 8학년의 경우 영어 수학 과학이 주요 과목이다. 보통 1주일에 4~7시간 수업이 이뤄진다. 주요 과목 이외에도 지리 역사 상업 컴퓨터 미술 회계 등도 배운다. 실용적인 과목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

문제는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시험 문제도 영어로 출제한다는 사실이다. UIS 하산 학사담당 이사는 "한국 학생들은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 입학 초기에는 대부분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업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기 때문에 시험 성적이 신통치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 학생들의 성적표를 직접 확인한 결과, 교과목 성적이 낙제 수준인 20점 이하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경우 성적표에는 빨간색 펜으로 기재돼 눈에 확 들어온다. 대산유학원 김세수 원장은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교과목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현지 교사들은 한국 학생이 잘 하는 과목으론 한결같이 수학을 꼽았다. 한국 지방 대도시의 한 중학교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 했던 박모(16)군도 예외는 아니다.

말레이시아 국제학교 SIS(Sayfol International School) 10학년으로 입학한 지 1년쯤 된 박군은 최근 치른 시험에서 영어 역사 과학 등 주요 과목은 50~60점 대에 그쳤지만, 수학 성적은 99점이다.

한국 학생이 수학을 잘 해 '코리안 매스(Korean math)'라는 말이 교사들 사이에서 나돌 정도다. 태국 트리니티 국제학교 뷔롯 시리와타나카몰 이사장도 한국 학생에 대해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수학 잘한다"고 평가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보습학원을 운영 중인 비젼학원 서화수 원장은 "수학은 영어실력과 비교적 상관없기 때문에 점수 따기가 훨씬 수월하다"며 "한국의 '수학의 정석' 같은 교재를 사용해 철저히 예습과 복습을 하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태국 방콕 소재 영국계 사립학교인 브롬스그로브(Broms Grove) 제프리 톱 교장은 좀 더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 학생은 수학, 음악은 잘 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역사 지리 미술 디자인 등 창조적이고 디자인 개념을 요구하는 과목은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마닐라 C&C 어학원 이성희 원장도 "고학년으로 갈수록 자기 생각이 많이 반영되는 영어 라이팅(writing)이나 에세이(essay)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 학생들의 특성이 동남아 국제학교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기간 머물다 한국으로 복귀하는 학생이 많아 시험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는 학부모들도 적지 않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현지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고 어차피 2~3년 체류하다 돌아가기 때문에 성적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닐라ㆍ쿠알라룸푸르=강철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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